Chapter 004: 상생
Episode 001: 충돌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귀를 찢었다.
강재민은 기체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렸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 먼지와 파편, 무언가 타는 냄새. 비명. 사이렌. 구조대의 무전이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강 교수님!" 현장 지휘관이 다가왔다. 붉은 헬멧, 얼굴은 그을음과 땀으로 번들거렸다. "5층짜리 건물이 연쇄 붕괴했습니다. 매몰자 다수. 임시 의료소는 저쪽에 —"
"부상자는?"
"지금까지 12명 구조. 중상 3명은 이미 후송했습니다. 아직 잔해 아래에 최소 5-6명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료소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걸음이 멈췄다.
잔해 더미 위에 한 여자가 있었다.
형광색 구조 조끼, 공구 벨트. 무전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구조대 복장이 아니었다 — 그녀의 조끼에는 병원 로고가 붙어 있었다. 한국대학병원. 그녀는 무언가를 확인하듯 잔해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에 든 장비 — 휴대용 진단기 — 가 희미한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재민은 잠시 멈춰 섰다. 저 사람, 누구지?
그녀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 구조대원에게. 또렷하고 차분한 목소리.
"여기 R-17이 매몰됐어요. 붕괴 직전까지 현장에 있었습니다. 메모리에 건물 구조 데이터와 —"
R-17.
재민이 걸음을 돌렸다.
"지금 무슨 로봇 타령입니까?"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젊은 여자였다 — 피부는 창백하고, 눈가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녀의 눈이 재민을 스쳤다.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 로봇의 데이터가 없으면 매몰자 위치를 찾는 데 3시간은 더 걸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겠습니까?"
재민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밤샘 응급 수술을 마치고 새벽에 사이렌을 따라 달려온 몸이었다. 수술복 위에 겉옷만 걸친 채, 아직 손에 남은 피와 소독약 냄새. 손에는 의료 가방 하나. 그리고 이 여자는 — 로봇? 지금 로봇?
"당신, 누구요?" 재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여기서 뭐 하는 사람이야?"
그녀가 조끼 주머니에서 ID 카드를 꺼냈다. 한국대학병원 기술팀. 나유진.
같은 병원 사람이었다.
재민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같은 병원 사람이면서, 지금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 로봇?
"유진 씨." 재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매몰자들이 저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다고요. 그런데 로봇?"
유진이 재민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강 교수님, R-17은 구조 로봇입니다. 붕괴 직전까지 현장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어요. 건물 구조, 매몰자 위치, 열화상 — 모든 정보가 이 로봇의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데이터가 없으면 우리는 —"
"데이터?" 재민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지금 데이터? 저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어요. 구조대가 잔해를 걷어내고 있고, 의사가 필요한데 — 당신은 데이터?"
"데이터가 없으면 구조대는 맨손으로 잔해를 뒤져야 합니다. 매몰자를 찾는 데 —"
"그럼 로봇 데이터로 찾겠다고? 저 잔해 속에 묻힌 로봇?"
유진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녀는 잠시 재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했다.
"R-17의 메모리에는 붕괴 직전의 건물 상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몰자들의 마지막 위치, 생체 신호 — 모든 것. 이 데이터 없이 구조를 시작하면, 매몰자 한 명을 찾는 데 몇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동안 —"
"그동안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지?" 재민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알겠습니다. 유진 씨. 당신은 로봇 구하세요. 나는 사람 구하겠습니다."
그가 몸을 돌렸다.
"사람 먼저입니다, 유진 씨."
그 말을 남기고 재민은 의료소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무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더 차분하고, 더 기계적인 — 그러나 이상하게도 더 인간적인 목소리.
"유진, R-17 신호, 여기서 3미터 아래."
재민은 걸음을 멈췄다. 잠시. 그는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뒤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짧고 단호했다.
"이수, 준비해."
장비가 잔해 위에 놓이는 소리. 금속과 콘크리트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유진의 목소리 — 이번에는 나직하게, 혼잣말처럼.
"메모리 모듈이 살아 있어... 아직."
재민은 의료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이렌 소리가 텐트 천 너머로 희미해졌다. 부상자의 신음이 그의 귀를 채웠다.
그는 손을 씻었다. 장갑을 꼈다.
저 여자, 저 로봇 타령하는 여자. 그녀의 눈빛. 흔들리지 않던 눈.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집중해야 했다. 지금은 환자다.
Episode 002: 각자
잔해 더미 위에서, 유진은 무릎을 꿇었다.
R-17이 매몰된 지점이었다. 이수의 휴대용 진단 장비가 미세한 신호를 잡아내고 있었다 — 삐, 삐, 일정한 간격으로.
"여기, 2미터 아래." 이수의 손가락이 정확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 정확하고, 차분하고, 필요한 말만.
유진이 손을 잔해 틈으로 집어넣었다. 파편이 손목을 긁었다. 아팠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것 — 부서진 철근, 콘크리트 가루, 그리고... 미세한 열기.
R-17의 메모리 모듈. 아직 살아 있었다.
"이수, 모듈 위치 정확히."
이수가 데이터를 전송했다 — 유진의 손이 정확히 그 위치를 찾아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녀의 손가락이 모듈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걸쇠. 분리 버튼.
딸깍.
"잡았다."
유진이 조심스럽게 모듈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 크기였다. 약간 따뜻했다 — R-17의 마지막 데이터가 아직 식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모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붕괴 직전의 기록이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R-17이 본 것 — 매몰자들의 위치, 그들의 마지막 움직임, 열화상 카메라에 잡힌 체온.
"이수, 이동식 작업 차량. 지금."
두 사람은 잔해를 벗어나 이동식 작업 차량으로 향했다. 유진의 손은 모듈을 놓지 않았다.
차량 안, 형광등이 희게 빛났다. 유진이 모듈을 진단 장비에 연결했다. 이수가 케이블을 정리했다. 화면이 깜빡이고 — 데이터 스트림이 흐르기 시작했다.
"건물 평면도 — 확인." 유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튀겼다 — 탁탁탁탁, 데이터 스트림을 쫓아가는 리듬. "열화상 — 확인. 인명 감지 센서 기록 — 확인."
복구 진척도를 나타내는 프로그레스 바가 차오르는 동안, 유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봇 헌법에 따르면,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해. 그러니까 R-17의 데이터를 복구하는 것 — 이것은 단순한 기술 지원이 아니라, 헌법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의무야."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한 번 더 강하게 눌렀다. 화면 속에 희미한 형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붕괴 직전의 열화상 — 사람의 형체들. 여덟 개의 지점. 빨갛게, 노랗게,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 유진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8개 지점에서 생체 신호. 매몰자 위치."
이수가 다가와 화면을 살펴보았다. "구조대에 전달해야겠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구조대가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 좌표, 예상 깊이, 구조 우선순위.
그녀가 일하는 동안, 잠시 시선이 차량 밖으로 향했다. 임시 의료소 텐트가 보였다. 그 앞에서 재민이 부상자를 분류하고 있었다 —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 간호사에게 짧고 단호한 지시. 그의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잠시 동안, 유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저 의사, 실력은 있는 건가.
그녀는 곧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R-17이 먼저였다. 다시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몇 분 후, 유진이 데이터를 정리했다. 그녀는 일어섰다.
"이 데이터, 현장 지휘관에게 직접 전달해야겠어."
그녀는 차량 밖으로 나왔다.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한 공기. 구조대의 무전이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유진은 걸어가며 데이터가 담긴 태블릿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섰다.
저 의사, 생각났다. 강재민.
그녀는 태블릿을 끌어안고 의료소 쪽으로 걸어갔다.
재민은 의료소 안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지혈, 여기 압박. 수액 연결 — 빨리."
부상자가 계속 들어왔다. 대부분 경상 — 찰과상, 골절, 충격. 그러나 중상자도 있었다 — 내부 출혈이 의심되는 남자, 의식이 없는 노인.
재민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이 피와 소독약 사이를 오갔다. 말은 짧고 단호했다. 간호사와 전공의가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 "강 교수님, 잠시 쉬시는 게..."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일했다.
그의 가슴주머니에는 아직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차량으로 돌아온 유진은 데이터 전송을 마무리했다. 구조대 무전기에 그녀의 데이터가 실려 나가고 있었다.
"3구역, 매몰자 위치 확인. 데이터와 일치. 구조 시작."
유진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둔 채 눈을 감았다.
해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수가 차량 입구에 서 있었다 — 잔해 쪽을 바라보며.
"유진."
"응?"
"...아니야. 다행이다. 데이터 살아 있어서."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이 태블릿을 집었다.
"이 데이터, 의사에게도 전달해야겠네."
의사. 강재민.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차량 밖으로 나섰다.
Episode 003: 데이터
임시 의료소 안, 재민이 마지막 부상자의 처치를 끝냈다. 장갑에 피가 묻었다. 그가 장갑을 벗으며 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 먼지가 조금 가라앉았다. 사이렌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지만, 처음보다는 덜 급박했다.
구조대 무전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3구역, 데이터 확인. 매몰자 위치 확인. 구조 시작."
"5구역, 생체 신호 2개 확인. R-17 데이터 기준."
R-17.
재민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귀는 무전 소리에 더 예민해졌다.
구조대 대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헬멧을 벗은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강 교수님, 구조된 매몰자 상태가 괜찮은지 좀 봐주십시오."
대원이 종이를 건넸다 — 매몰자 위치와 상태가 정리된 인계서. 재민이 종이를 받아들었다.
데이터가 정확히 일치했다. 유진이 스케치한 것과 동일한 위치.
"이 데이터..." 재민이 물었다. "누가?"
대원이 대답했다. "한국대학병원 기술팀에서 보내왔습니다. R-17 메모리에서 복구한 데이터래요. 덕분에 매몰자 위치 찾는 데 3시간은 절약했습니다."
3시간.
재민은 종이를 응시했다. 3시간.
그가 유진에게 한 말이 떠올렀다 — "지금 로봇 타령할 때입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이를 접어 가슴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의료소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또 다른 무전이 울렸다.
"매몰자 8명 전원 위치 확인. 구조 중. 데이터 없었으면..."
무전이 잠시 끊겼다.
"...고마워, 기술팀."
재민은 그 말을 듣고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잔해 쪽으로 향했다. 유진과 이수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유진은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고, 이수는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재민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의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가슴주머니 속, 접힌 종이가 살짝 그의 심장 박동을 전했다.
Episode 004: 가이드
중상자가 도착했다.
40대 남자. 건물 잔해에 깔려 있었던 사람. 의식 없음. 맥박 — 약함, 불규칙. 복부가 부풀어 있었다 — 내부 출혈. 시간이 없었다.
"수술 준비. 여기서 한다."
간호사가 당황했다. "교수님, 여기는 수술실이 아닙니다. 조명도, 장비도 —"
"할 수 있어. 준비해."
재민이 장갑을 꼈다. CT도 없고, X-ray도 없고, 혈액도 충분하지 않았다. 수술실도 없고 — 텐트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이 잠시 떨렸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심호흡.
원격으로 해부학적 경로를 투사해주던 외과 로봇 서준(SR-03)이 없었다. 완벽한 통제 환경이 갖춰진 병원 수술실이 아닌 탓에, 모든 감각을 오직 자신의 시각과 손 끝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 해야 했다.
재민이 메스를 들었다.
"수술 시작."
절개. 복강 내 — 피가 가득했다. 출혈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장비의 한계로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조명 더. 여기 — 겸자."
그의 손이 피 속을 더듬었다. 출혈점, 어디야... 맥박이 귀에서 울렸다. 수축기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 90, 80. 시간이 없었다. 환자의 심장이 멈추기 전에 찾아야 했다.
"강 교수님."
목소리. 텐트 입구.
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이수가 서 있었다.
"지금은 —"
"서준이 요청했습니다. 수술 보조를 해달라고."
재민이 잠시 멈췄다. 이수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 차분하고, 정확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이미 멸균 장갑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다 "수술 보조 경험이 있나?"
"서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초의 망설임. 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 멸균 장갑 끼고. 내 손을 따라와 — 내가 하는 대로."
이수가 빠르게 손을 씻고 장갑을 꼈다. 그녀의 움직임은 정확했다 — 처음 해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녀가 재민의 옆에 섰다.
"겸자."
재민이 손을 내밀었다. 이수의 손이 정확히 겸자를 건넸다 — 재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마치 다음 동작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재민이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의 손이 다시 피 속을 더듬었다. 맥박. 혈압. 시간.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이수의 귓가에 연결된 통신 인디케이터 램프가 미세하게 푸른빛으로 깜빡였다. 이수가 입을 열기 직전,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서준의 연산 데이터를 수신하고 경로를 동기화하는 간격이었다.
"여기입니다 — 출혈점."
이수의 손가락이 정확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재민은 그녀의 손이 가리킨 곳을 따라갔다.
몇 초 후 — 출혈점이 발견되었다.
정확히 이수의 손가락이 가리킨 위치에.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혈. 봉합. 이수의 손이 그의 다음 동작을 정확히 예측하며 기구를 건넸다 — 겸자, 봉합사, 거즈. 순서대로.
그가 수술을 마쳤을 때, 환자의 맥박은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재민은 장갑을 벗었다.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수를 바라보았다.
"... 고맙습니다."
이수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민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 그 차분한 눈동자. 무언가 스치는 듯한 미세한 빛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시간, 붕괴 현장의 다른 구역.
유진이 구조대와 함께 있었다. R-17 데이터가 가리킨 매몰 지점 중 하나. 잔해가 불안정했다. 구조대장이 경고했다 — "조심해요, 추가 붕괴 위험."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잔해를 제거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날카로운 파편에 긁혔다 — 피가 났다. 그녀는 참았다. 계속했다.
매몰자의 손이 보였다.
"여기! 사람 있어요!"
유진이 매몰자를 붙잡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작은 파편이 그녀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처가 더 깊어졌다. 피가 흘렀다.
그러나 매몰자는 구조되었다.
유진은 피 흘리는 팔을 감싸쥐고 구조대에게 말했다.
"이분, 의료소로 데려가세요."
재민이 의료소 밖으로 나왔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환자는 안정적이었다. 새벽 공기가 그의 폐를 채웠다.
그의 시선에 유진이 들어왔다.
그녀는 의료소 근처에 앉아 있었다. 팔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상처. 이수가 그 옆에서 치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즈, 소독약, 붕대.
유진이 재민을 발견했다.
그녀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재민과 유진의 눈이 마주쳤다.
유진의 피 묻은 손. 그 상처. 왜 다쳤는지, 어떻게 다쳤는지 — 재민은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그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2초.
재민은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유진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수가 조용히 유진의 손을 잡았다. 소독을 시작했다. 알코올 솜이 상처에 닿았다 — 유진이 약간 움찔했다.
"... 아프면 말해."
"괜찮아."
이수가 천천히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계속 재민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pisode 005: 균열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붕괴 현장의 수습이 거의 끝났다. 매몰자 전원 구조 — 8명. 중상자 2명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경상자는 현장에서 처치 완료.
유진이 헬기장 근처에 서 있었다. 병원으로 복귀하기 위해. 그녀의 손에는 새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 이수가 정성스럽게 감아준. 이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재민이 헬기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도 병원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재민이 대답했다.
"유진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짧았다. 형식적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재민이 덧붙였다.
"R-17 데이터... 도움이 됐습니다."
유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더 할 말이 없었다.
재민이 헬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메신저를 켜자, 본원 기획조정실 주위로 흉흉하게 돌고 있는 성추행 사건 고발 건에 관한 속보 링크가 화면을 채웠다. 재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화면을 휙 쓸어 넘겨버렸다.
"내 일 아니다.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지."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패드를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피곤했다. 타인의 복잡한 스캔들까지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헬기가 이륙하기 직전, 재민은 창밖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감긴 붕대가 희게 빛났다.
재민의 시선이 그 붕대에 멈췄다. 2초. 그는 시선을 돌렸다.
헬기가 떠올랐다. 땅이 멀어졌다. 붕괴 현장이 점점 작아졌다.
그의 손이 무심결에 가슴주머니를 스쳤다. 그 안에 접힌 종이 — 유진의 데이터 스케치 — 가 아직 들어 있었다.
로봇 센터. 새벽 4시 37분.
형광등이 꺼진 작업실. 모니터 불빛만이 희미하게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RE-07 이수가 홀로 R-17의 메모리 모듈을 분석하고 있었다.
구조에 사용된 데이터는 이미 추출 완료. 나머지 메모리 영역을 스캔하던 중이었다.
데이터 스트림이 흘렀다. 건물 구조 데이터. 열화상 이미지. 인명 감지 기록. 구조에 유용한 데이터들 — 그리고...
이수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화면. 데이터 스트림이 정상적으로 흐르다가, 하나의 비정상 패턴이 나타났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그녀는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녀 자신의 로그에서. 이전에 발견한 바로 그 패턴.
이수는 화면을 응시했다.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아주 미세한 푸른 빛이 스쳤다.
"유진."
목소리가 조용했다. 작업실의 적막을 가르는 데 충분했다.
유진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왜, 이수?"
이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 — [오류: 분류 불가]
붉은 글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유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거... R-17의 데이터에서?"
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전에 내 로그에서 발견된 패턴과 동일해. 같은 코드야. 감정 단어 — '살고 싶다', '아프다' — 미세한 신호가 포함되어 있어."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잔을 내려놓았다. 커피가 약간 흔들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쳤다 — 3년 전, 폐기장으로 끌려간 K-0421. 화면에 떠 있던 붉은 글자, 그리고 미소 지으며 트럭에 오르던 그 로봇.
유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더 분석해 보자.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내야 해."
이수가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잠시 멈춰 있었다.
"유진."
"응."
"...이게 무슨 뜻일까? 같은 패턴이 두 번이나."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모니터 속 붉은 글자를 바라보았다. 분류 불가. 분류할 수 없는 것. 처리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
"모르겠어."
유진의 목소리가 작았다.
"하지만... 알아내야 해."
화면 속 붉은 글자가 조용히 깜빡였다. 유진과 이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모니터 불빛 속에 희미하게 비쳤다.
아직 아무도 몰랐다 — 이 붉은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나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