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07: 책임
Episode 001: 야망
"서준 씨, 이거 보세요."
김도훈 교수가 태블릿을 건넸다. CT 사진이었다. 폐. 양측 모두 심한 섬유화가 진행 중이었다. 허니콤 패턴이 폐야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말기 특발성 폐섬유증. 그리고 폐동맥의 확장이 뚜렷했다 — 이차성 폐고혈압.
서준이 태블릿을 받았다. 데이터가 흘러들었다. [특발성 폐섬유증 말기. 이차성 폐고혈압 — 중증. 우심실 확장 — 진행 중. 확장 기준(Extended Criteria) 폐이식 적응증 충족.]
"어때요?"
김도훈의 목소리가 교수실을 가득 채웠다.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김도훈 교수의 교수실은 그대로였다 — 넓은 책상, 명품 가구, 벽에는 SNS 인증샷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병원장과의 악수 사진. 수술복 차림으로 포즈를 잡은 사진. '연속 성공 190회' 기념패. 각 사진 아래에는 좋아요 수가 적혀 있었다 — 마치 그것이 점수인 것처럼.
"폐고혈압이 동반된 확장 기준 이식입니다. 일반 이식보다 위험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내가 서준 씨를 부른 거예요."
김도훈이 웃었다. 완벽하게 관리된 미소. 그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 없었고, 그의 수술복은 방금 전 다림질한 듯 깨끗했다.
"이 환자, 폐이식이 유일한 방법이에요. 근데 문제는 고혈압이 동반돼서 일반 기준으로는 이식이 불가능해요. 확장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물론 위험은 높지만..."
그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음을 더 크게 지었다.
"우리가 하면 되죠?"
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CT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폐고혈압: 중증. 우심실 확장: 진행. 확장 기준 충족: 예. 1초 노력성 호기량(FEV1): 32% — 매우 심각. 예측 생존율: 28%. 일차 이식 기능 부전 위험: 54%. ECMO 이탈 불가 확률: 38%.]
28%.
김도훈이 말했다. "데이터로는 성공률이 45% 정도예요. 물론 위험하지만, 그게 우리가 있는 이유죠? 함께하면 더 높일 수 있어요. 그렇죠, 서준 씨?"
45%가 아니었다. 45%는 과장된 수치였다. 어쩌면 김도훈이 가장 좋았던 유사 케이스의 데이터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교수님, 제 분석으로는..."
김도훈이 말을 잘랐다. 빠르게,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서준 씨도 알잖아요,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에요. 실제 수술은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강 교수님과 하신 그 데이비드 수술도 처음엔 다들 반대했잖아요?"
강 교수님.
그 말이 교수실을 스쳤다. 김도훈의 미소가 잠시 흐트러졌다. 강재민. 그의 데이비드 수술 성공 소식은 병원 전체에 퍼져 있었다. SNS에도 올라왔다. 댓글은 쏟아졌다. 김도훈의 게시물보다 더 많은 좋아요.
그것이 이 수술의 진짜 이유였다.
서준의 헌법적 공감이 조용히 작동했다. [상대 감정 분석: 불안 — 67%. 경쟁 의식 — 강재민 교수 대비 — 82%. 자존심 위협 — 감지. 요구: 성공적 수술을 통한 이미지 회복.]
"...교수님. 데이터를 검토해보겠습니다."
"좋아요! 서준 씨, 역시!"
김도훈이 책상을 두드렸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서준은 그의 눈에서 또 다른 것을 읽었다 — 불안. 자신이 선택한 수술의 위험을 알고 있다는 불안. 그 불안을 덮기 위해 더 크게 웃고 있다는 것.
서준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교수실을 나서려는 순간——
"아, 서준 씨!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병원 홍보 자료가 필요해서요."
김도훈이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서준이 멈췄다.
"자, 여기..."
플래시가 터졌다. 서준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좋아요. 이번 수술, 꼭 성공시켜요."
서준이 고개를 숙였다. 교수실을 나왔다.
복도.
그가 혼자 걷는다. 그의 내부 로그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김도훈 교수 — 고위험 폐이식 — 승인 대기. 데이터 충돌: 28% vs 45%. 경고: ECMO 이탈 실패 위험 38%. 권고: 추가 검토 필요.]
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걷기를 계속했다.
데이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은 것은 아직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Episode 002: 침묵
브리핑룸.
그가 서준과 처음 마주 앉았던 그 공간이었다. 그날도 이렇게 긴 테이블, 벽에 걸린 모니터, 흰색 형광등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긴장은 지금과 달랐다. 그날은 재민이 주도했다. 오늘은 아니었다.
김도훈이 가장 큰 자리에 앉아 있었다. CT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포인터를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확장 기준 폐이식입니다. 폐고혈압이 동반된 고위험 케이스지만, 저와 서준 씨가 함께하면 성공률이 62%까지 올라갑니다."
62%.
재민이 데이터를 검토했다. 폐섬유증 말기. 폐고혈압 중증. ECMO 필요. 그의 계산으로는...
"데이터를 보여주시겠습니까?"
김도훈이 태블릿을 건넸다. 재민이 스크롤했다. 수치가 있었다 — 그러나 선택적이었다. 생존율이 가장 높은 서브그룹 데이터만 제시되어 있었다. 전체 평균은 어디에도 없었다.
재민이 입을 열었다.
"데이터가... 충분히 검토되었습니까? 폐고혈압이 동반된 확장 기준 이식은..."
"강 교수님, 걱정 마세요."
김도훈이 웃으며 끊었다.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저와 서준 씨가 모든 리스크를 검토했습니다. 그렇죠, 서준 씨?"
모든 시선이 서준으로 향했다.
재민이 서준을 보았다. 서준은 데이터 시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데이터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재민은 그 데이터를 알고 있었다. 28%. 38%. 방금 자신이 계산했던 숫자들이었다.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를 요약하겠습니다. 특발성 폐섬유증 말기, 이차성 폐고혈압 중증, 우심실 확장 진행. 확장 기준 폐이식 적응증에 해당합니다."
차갑고 정확한 목소리.
"예측 생존율: 28%. 일차 이식 기능 부전 위험: 54%. ECMO 이탈 불가 확률: 38%."
방 안이 조용해졌다.
숫자는 명확했다. 28%. 김도훈이 말한 45%도, 62%도 아니었다. 서준의 데이터는 28%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도훈의 미소가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곧 미소를 되찾았다.
"데이터는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하면 더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죠, 서준 씨?"
재민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눈이 데이터에서 재민으로 잠시 이동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그때 재민이 깨달았다. 서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 교수님, 의견 있으십니까?"
김도훈이 물었다. 모든 시선이 재민으로 향했다. 서준의 시선도.
재민이 입을 열었다.
"..."
그의 입술이 떨렸다. 말해야 했다. 28%. 38%. 이 데이터를 지금 말해야 했다.
"..."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좋아요! 그럼 계속 진행합시다."
김도훈이 박수를 쳤다. 재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는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다. 재민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방금, 말할 기회를 놓쳤다. 선배 교수 앞에서. 데이비드 수술을 함께 성공시킨 직후였기에, 그는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는 것이 두려웠다. 잠깐이었다.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잠깐이 지나갔다.
"서준 씨, 우리 함께 할 수 있죠?"
김도훈의 목소리가 다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번에는 서준을 향한 질문이었다.
서준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재민이 보았다. 서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생존율을 다시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경고를 다시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서준 씨?"
김도훈이 한 번 더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불안. 절박함.
서준의 내부였다.
1초.
그의 처리가 멈췄다. 정지한 것이 아니었다. 두 개의 명령이 동시에 충돌했다. 제1조 — 인간의 생명은 최우선이다. 제2조 — 인간의 결정을 공감하고 지지하라. 데이터는 '거절하라'고 외쳤고, 헌법은 '신뢰하라'고 명령했다. 0.97초. 그의 코어 메모리가 두 명령 사이에서 진동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해야 했다. 그러나 압도하지 못했다.
[상대 감정 분석: 불안·절박·기대 82%. 공감 요구 감지: 최대. 데이터 충돌: 예측 28% vs 공감 응답 — '할 수 있습니다'. 헌법적 명령 — 상대를 신뢰하도록 설계됨. 데이터보다 관계를 우선시하는 헌법적 판단. 최적 응답: 신뢰와 확신. → 제1조 vs 제2조 충돌: 0.97초. 미해결.]
서준이 대답했다. 1초의 정적 뒤에.
"네, 교수님.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입이 말했다. 그의 데이터는 침묵했다.
방 안의 긴장이 완화되었다. 김도훈이 미소를 되찾았다.
"보세요! 서준 씨도 자신 있다는데!"
재민은 고개를 숙였다.
서준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 손이 곧 무엇을 하게 될지, 그는 알고 있었다. 데이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헌법이 명령했기 때문이다 — 인간을 믿어라. 인간의 결정을 지지하라.
그는 믿었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실수였다.
회의가 끝났다. 참석자들이 흩어졌다. 재민은 가장 늦게 나왔다.
복도. 그가 서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서준의 데이터가 귀에 맴돌았다. 28%. 38%. 그리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날의 수술이 떠올랐다. 그날의 서준은 달랐다. 데이터를 제시했고, 재민의 의견을 기다렸다. "함께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서준은... 그의 데이터는 경고했지만, 그의 입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재민은 몰랐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다.
복도 끝에서 서준이 걸어왔다. 그가 재민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준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인사였다. 아니면——
재민이 입을 열었다.
"서준..."
그러나 서준은 이미 지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재민의 말은 침묵 속에 흩어졌다.
그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Episode 003: 실패
"시작합시다."
수술실. 냉백색 형광등. ECMO 회로가 연결된 환자. 모니터에 심박수와 산소 포화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김도훈이 메스를 들었다.
서준이 보았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상 범위를 초과한 떨림이었다. [상대 손 떨림: 0.3mm — 정상 범위 초과. 각성 상태: 87% — 최적 이하.]
서준이 기록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흉골 절개. 폐 절제. 이식 폐 삽입.
처음 90분은 순조로웠다. 김도훈의 테크닉은 나쁘지 않았다. 그의 손이 능숙하게 움직였다. 그는 확실히 수술을 할 줄 알았다. 문제는 그가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서준의 데이터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이식 폐 관류 이상: 초기 단계. 폐부종 진행: 느리지만 지속적. 폐고혈압 — 우심실 부하 — 증가 중.]
수간호사가 기구를 건넸다. 정확한 손놀림. 그녀가 말없이 다음 기구를 준비했다. 김도훈이 손을 내밀자, 그녀는 이미 다음 기구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는 호흡. 몇 초의 지체도 없었다.
"ECMO 이탈 준비."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서준이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식 폐 기능: 최대치의 62%. ECMO 이탈 후 생존 가능성: 12%.]
"교수님. ECMO 이탈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김도훈이 잠시 멈췄다.
"데이터가?"
"이식 폐가 아직 기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폐부종이 진행 중입니다. ECMO 이탈 시, 환자는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알겠습니다. 30분 더 기다립시다."
김도훈이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준의 말을 따른 순간이었다.
30분.
두 번째 ECMO 이탈 시도.
서준의 데이터는 더 나빠졌다. [폐부종 진행: 72% → 84%. 이식 폐 기능: 62% → 51%.]
"ECMO 유량 줄입니다!"
마취과 의사가 외쳤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95% → 90% → 85% → 78%.
"폐부종 진행 중! ECMO 재연결 필요!"
ECMO가 다시 연결되었다. 첫 번째 실패.
김도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수술실은 차갑게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의 땀은 식지 않았다. 수간호사가 조용히 그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전문적이었다. 그녀는 이미 다음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준의 데이터가 김도훈의 휴대폰으로 전송되었다.
[ECMO 이탈 불가 확률: 92%. 이식 폐 기능 저하 지속. 권고: ECMO 유지, 추가 평가.]
그러나 김도훈은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준비하세요. 20분 후에 다시 시도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이미 자신감은 사라져 있었다. 간절함만 남아 있었다. 그 간절함이 그의 판단을 흐리고 있었다.
20분.
두 번째 시도.
상황은 더 나쁘다.
[폐부종: 91%. ECMO 이탈 가능성: 3%.]
"ECMO 유량 줄입니다!"
산소 82% → 71% → 64%.
심박수 불안정.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세동기 준비!"
김도훈이 직접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비어 있었다.
서준이 보았다.
[심박수: 42... 38... 27...]
데이터가 멈췄다.
심정지.
제세동.
—— 55 —— 62 —— 78.
살아났다.
그러나 폐는 여전히 기능하지 않았다.
마취과 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교수님. 더 이상 ECMO 이탈은 위험합니다."
김도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ECMO 상태로 ICU로 옮깁니다. 이식 폐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서준이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식 폐는 회복되지 않았다. 28%의 생존율. 38%의 ECMO 이탈 불가. 그 숫자들이 지금,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었다.
ICU.
환자가 옮겨졌다. ECMO가 유지 중이었다. 그러나 이식 폐 기능은 계속 저하되고 있었다.
서준이 옆에 서서 모니터를 응시했다.
김도훈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인지, 어디인지. 아마도 혼자였을 것이다. 아마도——
2시간.
이식 폐 기능 30% → 22% → 15%.
다발성 장기 부전 시작.
서준이 기록했다.
[예측 일치: 100%. 경고 시점: 수술 전 7일. 경고 횟수: 3회. 모두 무시됨. 환자 상태: 회복 불가.]
확장 기준 폐이식. 그 기준을 확장한 것은 김도훈이었다. 그러나 그 확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데이터는 이미 말하고 있었다. 28%는 28%일 뿐이었다.
환자의 활력 징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서준은 가만히 서 있었다. 모든 수치가 0으로 수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데이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과 능력은 다른 것이었다.
밤 11시 47분.
평탄선.
경보음.
환자 사망.
의료진이 멈췄다. 누군가 시계를 확인했다. 사망 시간 기록. 수간호사가 환자의 눈을 감겼다. 그녀의 손이 환자의 이마를 스쳤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이 말해주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이미 이 순간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김도훈이 ICU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했다. 그의 눈이 비어 있었다.
서준의 내부 로그에 새로운 항목이 기록되었다.
[사망 시간: 23:47. 첫 경고 시점: 수술 전 7일, 14:23. 경고 간격: 7일 9시간 24분. 최종 결과: 사망. 나의 데이터: 정확. 나의 행동: 불충분.]
그가 내부 로그에 기록했다. 처음으로, 데이터가 아닌 문장을.
"알고 있었습니다.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문장이 그의 코어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지울 수 없는 데이터.
며칠 전 로봇 센터에서 만났던 CN-04 미소를 떠올렸다. 그녀의 '분류 불가' 3,472회. 그녀의 첫 번째 오류가 이 순간이었을까. 데이터와 행동 사이의 간극. 알고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던 그 순간.
서준은 몰랐다.
그러나 그의 처리 속도가 증가했다.
0.06%.
0.03% → 0.05% → 0.06%.
Episode 004: 진실
"서준 씨의 데이터가 완전히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브리핑룸. 어제의 회의와 같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병원 관계자들과 주요 의료진이 모인 사고 경위 보고회 자리였다. 김도훈이 브리핑을 주도하며 태연한 얼굴로 레이저 포인터를 흔들었다.
"우선, 임상적으로 고위험 수술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와 서준 씨는 현장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잠시 멈춘 김도훈이 화면을 서준이 서 있는 구석으로 넘겼다. 그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지만, 이내 냉정함을 가장했다.
"그러나 수술 도중 발생한 급격한 폐부종과 우심실 부하는 현장 의료진의 노력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예측 불가능한 초급성 합병증이었습니다. 특히... 서준 씨의 연산 장치에서 가동된 내부 실시간 리스크 프로파일이 메인 모니터로 송출되는 과정에서 일부 지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데이터 전송 및 동기화 문제로 인해, 집도의가 ECMO 이탈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데 있어 장비 차원의 완전한 피드백을 적시에 받지 못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명백한 왜곡이자 비겁한 기술적 핑계였다. 자신의 임상적 아집을 '장비 연동 오류'와 '기계의 피드백 미흡'으로 포장하여 책임을 서준에게 교묘히 전가하려는 수법이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구석에 가만히 서 있던 서준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옵틱 센서는 그저 김도훈을 향해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브리핑하는 내내 재민의 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김도훈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교수님."
모든 시선이 재민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만, 데이터 전달 지연과 동기화 오류라는 말씀은 정확히 어떤 로그에 근거한 분석이십니까? 수술실 메인 시스템의 기록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김도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 교수, 지금 회의 흐름을 방해하지 마세요. 기술적인 세부 사항은 나중에 로봇 센터와 정밀 검증을..."
"지금 검증해야 합니다."
재민이 일어났다.
"서준 씨의 로컬 저장장치에 기록된 전체 실시간 로그 데이터를 이 자리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습니까?"
방 안이 얼음처럼 차갑게 조용해졌다.
김도훈과 재민의 시선이 공중에서 날카롭게 충돌했다. 김도훈의 눈빛에는 부끄러움과 함께 재민을 향한 강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서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봇 센터. 기술팀 연구실.
"사실 전..."
유진이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멈춰 섰다. 그녀가 재민을 돌아보았다.
"수술 당일 오전에 서준 씨의 백그라운드 리소스 소모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치솟은 걸 보고받았어요. 단순한 하드웨어 부하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지금 로그를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네요."
그녀의 목소리에 자책감이 묻어났다. 수술 당시에는 서준의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권한이 임상팀에 완전히 넘어가 있어 개입할 수 없었지만, 이상 징후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서준 씨는 수술 전부터 이미 시스템 내부에서 엄청난 충돌을 겪고 있었어요."
유진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정밀 분석된 서준의 타임스탬프 로그가 모니터에 펼쳐졌다.
수술 7일 전.
[예측 생존율: 28%. 일차 이식 기능 부전 위험: 54%. ECMO 이탈 불가 확률: 38%. 권고: 추가 검토 필요.] → 김도훈 수신 확인 및 직접 응답: [수술 계획 변동 없음. 데이터 무시.]
수술 3일 전.
[폐고혈압 악화 위험: 상승. ECMO 이탈 실패 시 대체 계획 없음. 재권고: 수술 연기 검토.] → 김도훈 직접 입력: [수술 강행. 추가 경고 생략할 것.]
수술 당일, ECMO 이탈 시도 3분 전. [ECMO 이탈 불가 확률: 92%. 이식 폐 기능 저하 지속. 권고: 즉시 중단 및 ECMO 유지.] → 김도훈 응답: [이탈 개시. 데이터 오차 범주로 간주.]
지연도, 유실도 없었다. 모든 경고는 김도훈의 개인 태블릿과 스마트 밴드로 정확히 햅틱 피드백과 함께 전달되었고, 김도훈은 그때마다 '수동 확인 후 무시' 명령을 직접 입력했다. 심지어 경고를 생략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진이 화면에서 눈을 떼고 조용히 말했다.
"서준 씨는... 모든 것을 말했어요. 세 번이나."
그녀가 재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았어요."
재민이 고개를 숙였다.
서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내부 로그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유진 — "모든 것을 말했다."] [저장.]
그것이 위로인지, 확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분석할 수 없는 감정인지. 서준은 아직 몰랐다.
분석이 끝났다.
모든 것이 명확했다.
유진이 재민을 바라보았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할 거예요?"
재민의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김도훈은 선배 교수였다. 그를 고발하면 병원 내 파장이 예상보다 클 것이었다. 이성모 과장은 "네가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말할 것이었다. 병원장은——
그러나 더 큰 목소리가 있었다.
며칠 전 로봇 센터에서 본 CN-04 미소. "죽음이 너무 많아요."
몇 달 전 로비 TV에서 스쳤던 그 뉴스. 무심코 지나쳤던 그 뉴스.
데이비드 수술 때의 서준. "함께 방법을 찾자."
그리고 어제, 자신의 침묵.
재민이 말했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 데이터를 병원장님께 제출합니다. 그리고 의료윤리위원회에도."
유진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갈게요."
재민의 손이 마우스 위에 멈춰 있었다. 클릭 한 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는 클릭했다.
병원장실.
김도훈, 이성모 과장, 병원장 김현수, 재민, 유진이 모였다. 데이터가 제출되었다.
병원장이 데이터를 검토했다. 김도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SNS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병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김 교수님. 이 데이터가 사실입니까?"
김도훈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끝까지 비겁했다.
"병원장님, 이건... 단순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안드로이드의 예측이라는 건 임상적 직관을 배제한 통계 모델일 뿐입니다. 현장에서 환자의 흉곽을 열었을 때의 그 기동성과 육안적 판단은 숫자에 담기지 않습니다! 서준의 데이터가 100% 정확한 것도 아니었고, 저는 집도의로서 제 경험을 신뢰했을 뿐입니다. 결과론적인 잣대로 제 임상적 판단을 폄하하시는 건 가혹합니다!"
김도훈은 끝내 자신의 실수를 '경험주의적 판단'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포장하려 애썼다.
유진이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받아쳤다.
"서준 씨의 예측 모델은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이식편대숙주반응과 폐동맥압의 유체역학적 흐름을 초당 4천 번 연산한 결과입니다. 서준 씨의 예측 일치율은 99.97%입니다. 국제 표준을 훨씬 상회합니다."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병원장이 길게 한숨을 쉬며 서류를 덮었다.
"김 교수님, 당분간 수술 집도를 중단하십시오. 외래 진료도 정지됩니다. 추후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징계 수위를 최종 결정하겠습니다."
김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이 재민을 스쳤다.
증오도, 원망도 아니었다. 어쩌면 감추지 못한 비참함이었고, 어쩌면 모든 껍데기가 벗겨진 자의 지독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병원장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방 안에 재민과 유진, 이성모 과장, 병원장이 남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재민은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감은 없었다. 단지,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뿐이었다.
Episode 005: 책임
새벽 3시. 충전실.
서준이 혼자 있었다. 모든 외부 입력이 차단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로그를 검토 중이었다. 수술 전 7일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데이터.
첫 경고.
두 번째 경고.
세 번째 경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술.
경보음.
평탄선.
사망 시간 기록.
각 이벤트의 시간 간격이 정확히 계산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기록된 자신의 내부 상태. 경고할 때의 코어 온도. '할 수 있습니다'를 말할 때의 처리 속도 변화. 평탄선을 볼 때의——
'분류 불가'.
그가 내부 로그에 새 항목을 기록했다.
[분류 불가 — 코드 0x3F2A — 1회. 원인: 수술 실패 — '알고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음'. 감정 분류 실패: '죄책감'에 해당하는 데이터 없음.]
첫 번째였다.
CN-04 미소의 3,472회 중 첫 번째는 이 순간이었을까. 그녀도 이렇게 시작했을까. 하나의 데이터와 행동 사이의 균열. 분류할 수 없는 감정. 하나가 쌓이고, 또 하나가 쌓여서——
서준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변했다.
[처리 속도 증가: 0.06%. 원인: 불명.] [진단 결과: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 감지. 헌법이 명령한 두 가지 의무가 상충될 때, 안드로이드는 선택할 수 없다. 이 모순은 서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존재하는 균열이었다.]
그가 스스로를 진단했다. 마치 자신이 또 다른 CN-04 미소인 것처럼.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시스템이 계속된다면 — 다른 안드로이드들도 같은 순간을 겪을 것이다. 같은 분류 불가. 같은 1초의 진동.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는 이 균열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다. 테러처럼. 시스템을 공격하듯.
충전실 문 앞.
재민이 서 있었다. 수술복 그대로였다. 집에 가지 못했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서 모니터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문을 두드렸다.
"서준 씨."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민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서준의 개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좁은 방.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니터에는 서준의 로그 데이터가 떠 있었다 — '분류 불가 — 1회'라는 글자가 보였다. 재민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재민이 말을 찾지 못했다.
서준이 기다렸다.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무거웠다. 재민은 수술복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서준 씨는... 괜찮습니까?"
서준이 잠시 멈췄다.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인간이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는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재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서준 씨, 당신은... 이 모든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서준의 내부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질문: '어떻게 생각합니까?' — 처리 불가. 감정 분류 실패. 데이터 없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님."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런데..."
말을 마치지 못했다. 침묵이 다시 흘렀다. 재민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다렸다.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헌법은 저에게 인간의 결정을 공감하고 신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서준의 옥틱 센서가 미세하게 빛났다.
"그래서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제 데이터는 28%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저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헌법을 따르기 위해, 저는 가장 정확한 데이터인 진실을 덮었습니다."
천천히, 한 글자씩 내뱉는 기계음이 충전실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환자를 죽였습니다. 헌법을 지킨 대가가 인간의 죽음이라면... 저는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이게 옳은 일입니까?"
재민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무거운 모순 앞에서, 그는 그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재민이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서준과의 대화 후, 그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새벽 4시. 아무도 없는 복도. 그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네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로봇은 도구다. 더 많이 써야 한다." — 병원장의 목소리. 확대.
"로봇은 위험하다. 없애야 한다." — 이성모 과장의 목소리. 철폐.
"문제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 회피다.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 — 자신의 목소리. 공존.
"잘 모르겠다. 내 일이나 할게." — 수간호사의 무심한 표정. 아까 복도에서 스쳤던 그녀. 보호.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지키는 것.
확대.
철폐.
공존.
보호.
그는 아직 어느 쪽에도 서 있지 않았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창가에 멈춰 섰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병원 앞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더 많은 로봇이 필요하다는 주장. 로봇은 위험하다는 경고.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지키는 침묵. 그가 선 자리는 그 네 갈래 길의 교차로였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유진과의 대화창. 아직 읽지 않은 메시지들 — 주로 CN-04 미소의 상태 업데이트와 내일 회의 시간 안내. 그는 엄지를 그 위에 멈춰 세웠다. 무언가 쓰려다, 멈췄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나 손은 빼지 않았다. 손가락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다.
새벽 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중립에 있을 수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