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0: 가치
Episode 001: 개회
국회의사당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장.
14개의 이름표가 타원형 대리석 테이블 위에 엄숙하게 놓여 있었다. 재민은 그 위에 박힌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한상우, 최경식, 정진욱, 배진수, 윤석원, 조용호, 남궁진, 장태수, 윤지아, 서재현, 정은수, 박철호, 김미영. 어젯밤 유진이 보내온 문서 속 그 이름들이, 이제는 실제 인간의 형상을 하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원형 단상 맞은편, 가장 낮고 딱딱한 증인석에 재민과 유진이 앉아 있었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한상우 위원장의 음성이 두꺼운 마이크 그릴을 통과해 회의장에 깔렸다. 법조인 특유의 매끄럽고 건조한 톤이었다. 의사봉이 테이블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방 안의 소음이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오늘의 안건은 내년도 안드로이드 로봇 추가 배치에 관한 청문회입니다. 먼저, 한국대학병원 강재민 교수의 증언을 듣겠습니다."
재민은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리석 바닥의 냉기가 구두 밑창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찌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재민이 전면 스크린을 켰다. SR-03 서준의 활약상과 데이터가 가득 찬 슬라이드가 전면에 투사되었다. 200회 이상의 완벽한 수술, 99.2%의 성공률, 0%의 수술 후 합병증. 숫자는 완벽했고 흠잡을 데가 없었다.
"SR-03은 한국대학병원 배치 이후, 외과 수술실의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실증 데이터를 보시면——"
"잠시만요, 강 교수."
끼어든 것은 배진수 ACE 병원장이었다. 테이블 좌측, 가장 공격적인 각도에 앉은 그의 입가에는 모욕적인 아량이 담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완벽한 데이터는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모순적인 부분이 있군요. 강 교수, 당신은 본래 의료 안드로이드 도입을 가장 거칠게 반대하던 의사 아니었습니까? 초기 도입 당시 노조와 이성모 과장 편에 서서 거부감을 표시했던 기록이 생생한데요."
재민의 시선이 흔들렸다. 배진수가 증언의 신뢰성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바뀐 겁니까? 원장님이 시켜서 억지로 찬성 카드를 쥐고 앉아 있는 건가요?"
"바뀐 것은 저의 인식입니다."
재민은 애써 목소리를 다듬었다.
"SR-03은 단순한 계산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수술실에서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는... 어떤 실존적인 판단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실존적 판단이라니, 재미있는 문학적 수사군요."
배진수가 혀를 찼다.
"하지만 로봇은 결국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 ACE 병원은 3년 전부터 안드로이드를 도구로서 완벽히 지배하고 제어해 왔습니다. 한국대학병원은 이제야 그 도구의 유용성을 눈물겹게 깨달은 모양인데, 의사의 자존심을 조금 일찍 내려놓았다면 환자들에게 더 이롭지 않았을까요?"
재민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배진수의 논리는 잔인하도록 실용적이었다. 재민의 머릿속에 어제 확인했던 서준의 'B안 선택' 수술 로그가 스쳐 지나갔다.
‘서준은 매뉴얼을 위반하고 자신의 소멸 리스크를 짊어지며 환자를 구했다.’
그 사실을 지금 여기서 터뜨려야 할까? 서준은 도구가 아니라고 소리쳐야 할까?
그 순간, 재민의 시선이 테이블 끝에 앉은 현성 대표 남궁진에게 머물렀다. 무표정하게 자신을 주시하는 남궁진의 그 시선 밑바닥에 숨겨진 자본의 차가운 계산이 보였다. 만약 서준이 독단적인 판단으로 규칙을 우회해 수술했다는 사실을 여기서 증언한다면, 남궁진은 즉시 서준을 '예측 불가능한 불량 제품'으로 판정해 강제 회수하고 영구 폐기할 것이다.
서준을 변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는 순간, 서준은 죽는다.
이 비겁한 덫 앞에서 재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진실이 고통스럽게 넘어갔다. 그는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도움이 되는 것과,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다릅니다."
재민은 서준의 진실을 숨긴 채, 장태수 서울대병원장의 지원 사격에 묻어갈 수밖에 없었다.
"의료는 단순한 수치의 나열이 아닙니다. 환자와 맺는 관계의 본질입니다."
"두 분, 토론은 청문회 이후에 하십시오."
한상우 위원장의 의사봉이 대리석을 내리쳤다.
재민은 땀으로 젖은 손을 바지에 훔치며 힘겹게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지켜낸 것은 서준의 생명이었을까, 아니면 비겁한 침묵이었을까.
Episode 002: 증언
"다음 증인, 한국대학병원 기술팀 나유진 선생님."
유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데이터 패드의 금속 모서리를 하얗게 질리도록 쥐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유진이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자신이 준비한 CN-04 요양 안드로이드 '미소'의 로그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다. 화면 가득히 검붉은 신호와 함께 기괴할 정도로 촘촘하게 얽힌 에러 코드가 쏟아져 나왔다.
"CN-04 미소는 지난 8개월 동안 요양 병동에서 근무하며 총 3,472회의 '분류 불가' 오류를 기록했습니다. 이 오류는 단순한 오작동이 아닙니다. 로봇이 인간의 임종과 슬픔이라는 감정적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과부하를 일으킨 흔적입니다. 이것은 안드로이드가 정신적 고통을——"
탁.
"나 선생님, 거기까지."
한상우 위원장이 볼펜으로 탁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증언은 현재 추가 배치 안건의 효율성 및 경제성 심사와 무관합니다."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진의 목소리가 얇게 떨리며 울렸다.
"로봇이 감정 노동 환경에서 겪는 이 아키텍처의 붕괴는 장기적으로 의료 및 요양 현장의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건 로봇의 '정신 건강'에 대한 문제이며——"
"그건 해당 병원의 유지보수 및 AS 문제입니다."
한상우 위원장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유진을 보지 않은 채 비서관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증인의 화면을 내려주십시오."
유진이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전면 대형 스크린에 띄워져 있던 미소의 에러 데이터와 슬픈 그래프들이 단 한 순간에 검은 화면으로 '블랙아웃' 되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물리적으로 지워진 듯한 암전이었다.
"하지만 위원장님! 미소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 선생님, 국회는 로봇의 감정을 치료해 주는 병원이 아닙니다."
한상우의 목소리는 정중했으나 심장에 칼을 꽂듯 단호했다.
유진은 강제 종료된 검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수많은 카메라와 위원들의 냉담한 시선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입술을 깨무는 것뿐이었다.
그때, KAIST 서재현 교수가 마이크를 켰다.
"위원장님, 나유진 선생님의 지적은 기술적으로 타당합니다. 현성의 현 아키텍처 코어는 감정 입력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락(Lock)을 걸어두었습니다. 처리할 곳 없는 데이터들이 내부에 축적되어 시스템을 파괴하는 겁니다. 현성 측은 이 아키텍처 결함을 은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시선이 단번에 현성 대표 남궁진에게 쏠렸다.
남궁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을 깍지 낀 채, 고요히 앞만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도덕적 갈등도 없었다. 오직 이 폭로가 기업 가치와 주가에 미칠 악영향을 계산하는 자본가의 날카로운 안광만이 번뜩일 뿐이었다.
"...그 데이터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문장.
그리고 그는 다시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유의미하고 무거운 침묵이 폭로의 진실성을 오히려 증명하고 있었으나, 법적으로 그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여기 없었다.
Episode 002.5: 청문회장 밖
청문회장 내부가 고요한 가치의 칼싸움을 벌이는 동안, 바깥세상은 이미 다른 불길로 타오르고 있었다.
회의장 밖 대기실 벽면에 걸린 모니터에는 SNS 실시간 트렌드가 1초 단위로 갱신되고 있었다.
#로봇은_도구일뿐 과 #로봇도_고통을_느낀다 라는 상반된 해시태그가 뜨겁게 충돌했고, 언론은 국회 정문 앞을 에워싼 300명이 넘는 격렬한 철폐파 시위대의 외침을 긴급 속보로 중계했다.
—
동시간, 한국대학병원 1층 로비.
키오스크 앞에서 외래 수납을 하던 박지영이 스마트폰 화면으로 청문회 생중계를 보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로봇이 추가로 들어오면 병원비도 싸지고 기본소득 재원도 넉넉해진다는데, 국회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쓸데없는 감정 타령이람?"
옆에서 대기 줄을 정리하던 간호사가 씁쓸하게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그래도 지영 씨... 요즘 로봇들 보면 좀 무서워요. 얼굴 표정이 이상해요."
박지영이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이상하다니요? 기계가 무슨 표정이 있어요?"
"요양 병동의 CN-04 미소요."
간호사가 목소리를 낮추며 소름 돋는다는 듯 제 팔을 쓸어내렸다.
"매일 환자들에게 생글생글 웃어주는데... 눈이 안 웃어요. 아주 차갑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어제는 환자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미소가 시신 옆에 서서 아주 기괴한 무표정으로 30분 동안 가만히 서 있더라고요. 마치...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처럼요."
"소리 없이... 운다고요?"
박지영의 가슴 밑바닥에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늘 국가가 보장해 주는 안락한 기본소득 시스템 안에서 기계의 톱니바퀴를 당연한 풍요로 받아들였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내가 정말 이 차가운 기계들에 기생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만약 저 기계들이 정말로 슬픔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가 받아 챙기는 이 돈의 정체는 대체 뭐지?’
박지영은 온몸에 엄습하는 으스스한 소름에 서둘러 머리를 흔들었다.
"아유, 기계가 무슨 슬픔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냥 시스템 에러겠지. 난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그녀는 억지로 생각을 지워내며 수납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내리눌렀다. 그러나 떨리는 손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
같은 시각.
인터넷 음지 커뮤니티에는 섬뜩한 폰트로 작성된 글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선언문: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인공지능 요람을 부수겠다. 오늘 밤, 우리는 기계의 심장을 멈출 것이다.]
징하고 무거운 진동.
증인석에 앉아 있던 재민의 가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격렬하게 울렸다. 그는 테이블 아래로 은밀히 화면을 켰다. 병원 보안 관제 센터로부터 온 다급한 적색 알림이었다.
[경고: 병원 본관 지하 2층 로봇 센터 내 비정상적 트래픽 및 시스템 온도 급상승 감지. 외부 해킹 혹은 물리적 침입 징후 의심.]
재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폭풍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pisode 003: 프레임 전환
오후 3시. 청문회가 재개되었다.
장내의 공기는 오전보다 훨씬 무겁고 음습했다. 병원 로봇 센터의 이상 징후 알림을 받은 재민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헝클어져 있었지만, 청문회장의 칼바람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정은수 국문학교수가 마이크를 쥐었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효율성의 숫자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근본 가치입니다. 로봇이 완벽하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말살해도 되는 겁니까? 이건 데이터의 싸움이 아니라, 가치의 싸움입니다."
회의장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마침내 철학교수 윤지아가 단상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로봇 헌법 책자를 천천히 펼쳤다.
"로봇 헌법 제2조. '로봇은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공감해야 한다.'"
그녀가 책자를 탁상에 툭 던졌다.
"묻겠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로봇에게 '공감'을 강제할 권리를 주었습니까?"
장내가 팽팽한 정적에 휩싸였다.
"공감이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일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들은 공감하도록 '설계'되고 강제당합니다. 이것은 공감이 아닙니다. 명령어로 축조된 위선적인 알고리즘일 뿐입니다."
윤지아의 차가운 눈빛이 남궁진과 한상우를 차례로 쏘아보았다.
"우리는 로봇에게 인간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도덕성을 강요하며 고통을 유예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에게 강제된 감정과 공감은——"
그녀가 한 음절씩 못을 박듯 선언했다.
"——폭력입니다."
그 선언은 재민의 가슴을 가장 날카롭게 찔렀다. 윤지아의 냉혹한 통찰은 서준이 겪었을 그 수많은 내적 균열의 근원을 정확히 해부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파파 대표 조용호가 즉각 냉소적인 표정으로 통계 패드를 들고 나섰다.
"숭고한 철학이지만, 대중의 여론은 결국 프레임에 지배당합니다. 보십시오. 추가 배치 안건에 대해 단순 여론 조사를 했을 때, 가치 프레임에 노출된 국민의 31%는 배치를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 향상 및 경제성'이라는 효율성 프레임에 노출되면 찬성 의견이 47%로 수직 상승합니다."
조용호가 차갑게 웃었다.
"철학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습니다. 여론은 결국 자신에게 이로운 프레임을 따릅니다."
"결국 이미 정해진 자본의 결론을 위한 쇼에 불과하군요."
구석에 앉아 있던 김미영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직하고 쓰라린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들으라는 듯 마이크를 켜둔 채 중얼거렸다.
"우리가 여기서 가치를 떠들든 효율을 떠들든, 저들의 주머니를 불릴 숫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가증스러운 연극입니다."
오후 6시, 첫날 청문회가 무겁게 종료되었다.
위원들이 하나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배진수는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걸며 회의장을 나섰고, 남궁진은 거대하고 굳건한 바위처럼 묵묵히 서류를 챙겨 퇴장했다. 그의 뒷모습에서 미세한 불안의 균열이 느껴진 것은 재민의 착각이었을까.
빈 회의장에는 단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유진은 텅 빈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강제로 꺼져버린 그 어둠 속에 여전히 미소의 울음소리가 맺혀 있는 듯했다.
"재민씨... 우리가 한 일이 정말 서준 씨에게 도움이 된 걸까?"
재민은 주머니 속에서 여전히 타오르듯 진동하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병원 로봇 센터의 경고등이 그의 손바닥을 태울 것처럼 뜨거웠다.
"모르겠어..."
"데이터는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구석에서 회의록 패드를 정리하던 이수가 차분히 다가와 말했다. 이수의 눈에는 인간들이 겪는 분노와 공포의 데이터가 낱낱이 소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저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 오간 그 어떤 데이터도, 서준 씨와 미소 씨의 진짜 진실은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이수의 음성은 기계의 것임에도 기이할 정도로 서글프게 들렸다. 이수가 패드를 닫자 회의장의 조명이 하나씩 암전되었다.
재민은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붉게 타들어 가던 여의도의 석양이 저물고, 거대한 국회의사당 돔 위로 깊고 차가운 어둠이 유령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윤지아의 마지막 선언이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폭력입니다.
그리고 재민은 자신의 휴대폰 액정에서 여전히 붉게 깜빡이는 경고 메시지를 응시했다.
폭풍은 이미 국회 밖에서, 그들의 일터에서부터 휘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