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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3: 테러

Episode 001: 소집

지하실.

낡은 형광등 한 대가 위태롭게 깜빡였다. 웅웅거리는 50Hz의 미세한 전기 험(Hum)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무겁게 채웠다. 사방이 사각지대인 콘크리트 벽면에서는 축축한 습기가 배어 나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권혁진은 날것의 철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 안에는 방금 통화가 끝난 휴대폰이 쥐여 있었다.

기계의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김미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이정표처럼 맴돌았다. “통과됐어. 네 말이 맞았어. 이제 방법을 바꿔야 해.”

권혁진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바닥을 서성였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 그의 구둣발 소리가 둔탁한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방법을 바꾼다.

그 방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정교하게 설계해 왔다. 그러나 막상 현실의 실행 스위치 위에 손을 올리려 하니, 찰나의 망설임이 그의 손가락 끝을 묶었다.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약속한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철제 테이블 위에는 대학 시절부터 손때가 묻은 존 로크의 *<통치론>*이 펼쳐져 있었다. 국가가 신뢰를 배신했을 때 인민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권리, '저항권'에 관한 페이지였다.

당시 그는 이 활자들을 읽으며 그저 지적 유희로 자문하곤 했다. 만약 내가 법이 침묵하는 야만의 시대를 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그는 정확히 그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대리석 천장 아래에서 법의 이름으로 탐욕을 가결해 버린 국회의사당의 세련된 폭력. 그리고 이 음습한 지하실에서 자신들이 행하려는 가차 없는 반격. 두 결정의 무게는 같았으나, 방식은 완전히 다를 것이었다.

권혁진은 펼쳐진 책을 거칠게 덮었다. 이제 고상한 이론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창고 벽면에 붙은 커다란 서울 시내 지도 앞으로 다가섰다. 지도 위에는 붉은색 형광펜으로 몇 군데의 거점이 굵게 표시되어 있었다. 서울일원병원, 국회의사당, 그리고 현성 본사.

그의 손가락이 현성 본사 건물을 가볍게 짚었다가 쓸어내렸다.

계단 위쪽에서 철제 문이 열리며 발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도착자였다.


정보 및 통신 담당인 Raven이 계단을 급히 내려왔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지하실의 정적을 깼다. 그는 이미 무언가 중대한 단서를 포착한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Raven은 혁진에게 가벼운 목례조차 생략한 채, 안쪽에 마련된 통신실로 직행했다.

"찾았어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그의 뒤를 이어 기계 제작 담당인 Gear가 지하실로 들어섰다. 그는 늘 그렇듯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작업실 문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거친 바지춤에 양손을 비벼 닦았다. 기계 부품을 만지며 묻은 기계유를 닦아내는 오래된 버릇이었다. 이미 깨끗하게 씻은 손이었음에도 그는 행동을 반복했다. 잠시 멈칫하던 Gear는 이내 안쪽 작업실로 들어가 널브러진 공구들을 소리 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혁진은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했다.

정보를 쫓아 날뛰는 Raven은 너무 빨랐고, 기계에 침잠하는 Gear는 너무 느렸다. 그러나 그 결이 다른 두 사람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단 하나였다.

Raven이 통신실에서 나와 모니터에서 갓 인쇄한 캡처 이미지 몇 장을 철제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흑백으로 출력된 이미지 속에는 흐릿하지만 기괴한 아키텍처 코어 분석도가 그려져 있었다. 혁진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한눈에 알아차렸으나, 아직은 입을 다물었다.

"곧 시작될 겁니다."

Raven의 짧은 경고는 회의실의 공기를 단숨에 건조하게 만들었다.


묵직한 침묵을 뚫고 한동수가 걸어 내려왔다.

그는 말없이 혁진과 찰나의 눈빛을 교환했다. 거대한 체구에서 풍기는 지독한 정적만으로도 지하실의 압도감이 한 옥타브 치솟았다. 동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구석진 벽면에 몸을 기댔다. 그의 무감한 시선이 지하실 내부를 정교하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권혁진의 표정, 유민경이 남긴 서류 가방, Raven의 테이블 위 사진들, 그리고 작업실 문턱에 선 Gear의 젖은 손까지. 그는 기록자이자 설계자로서 모든 것을 머릿속에 각인하고 있었다.

그 뒤로 유민경이 서류 가방을 단단히 움켜쥔 채 들어섰다.

가방이 쇠붙이라도 든 것처럼 묵직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그간 수집한 현성의 로봇 인도 기준 법안 초안, 병원 내부의 인력 감축 계획서, 그리고 가결 이후 전개될 인프라 확장 타임라인 문서를 신속하게 분류했다.

혁진이 그녀의 꼼꼼한 손놀림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준비해 온 계획서의 디테일은 혁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교함을 담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민경이 서류 한 장을 평평하게 펴며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결정을 내렸다면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신뢰, 혹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직감이 한동수의 침묵 위로 내려앉았다.


마지막 계단 발소리가 지하실 전체에 낮게 웅웅거렸다.

지극히 피로하고, 동시에 지독하게 무거운 발걸음. 혁진은 그 구두 굽 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전직 노조 활동가이자 청문회의 방청석에서 제도권의 한계를 뼈저리게 통감했던 김미영이 지하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붉게 가라앉은 눈이 혁진의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0.5초의 짧은 스파크.

그녀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테이블의 가장 아랫부분, 혁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의자를 끌어 앉았다. 혁진은 그녀가 일부러 그 먼 거리를 선택했음을 즉각 간파했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동지였기에,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려는 심리적 방어선을 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혁진이 먼저 입을 열려 조심스럽게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미영이 선수를 쳤다.

"나는 아직 이 미친 짓에 동의한 적 없어. 그저, 들어보러 온 것뿐이야."

그녀의 서늘한 한마디에 지하실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권혁진에게로 쏠렸다.


마침내 여섯 명의 인원이 철제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다.

권혁진이 테이블 상석에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는 모두의 얼굴을 하나씩 깊게 응시했다. 이 허름하고 축축한 지하실이, 이제 새로운 역사의 방아쇠를 당길 유일한 화약고가 될 것이었다.

혁진이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미세한 떨림조차 없이 평온했다. 적어도 남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터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지하실 벽면에 부딪쳐 돌아오는 음성은 더없이 단단했다.

"동지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긴 침묵을 주었다.

"말과 서류로 하는 고상한 싸움은 오늘 오후 8대 6 가결로 완전히 끝났습니다. 공청회는 조작되었고, 국회는 자본의 로비에 놀아났으며, 로봇 헌법은 기득권의 배를 불리는 합법적 칼날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평화적 수단을 탕진했습니다."

그가 미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력하게 짓밟힐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방식으로 대답할 것인가?"

형광등이 파르르 떨리며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그 정적 속에서 누구도 혁진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평화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말했음을, 지하실의 차가운 습기가 증명하고 있었다.


Episode 002: 논쟁

"우리는 정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혁진은 두 손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짚은 채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데이터를 들이밀고, 논리로 설득하고, 증인을 세워 가치를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입니까? 저들은 '국가 경쟁력'이라는 단 두 단어로 우리의 모든 도덕성을 쓰레기통에 처박았습니다. 로봇 한도법은 그들의 탐욕을 합법화하는 거대한 울타리일 뿐입니다."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입안이 타들어 가듯 바싹 말라붙었다.

"그들의 프레임은 강력했습니다. 안보, 경쟁력, 기술 패권. 우리는 가치로 싸웠으나 저들은 힘으로 뭉갰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리도 힘의 언어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혁진의 선언에 한동수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Raven 역시 테이블을 툭 치며 동조했다.

그러나 김미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당신 논리는 언제나 그럴싸해, 혁진."

미영이 몸을 일으키며 쏘아붙였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평화적 방법이 실패했다고 해서 테러가 정당화되지는 않아. 폭력은 대중의 지지를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잃어버리는 자멸의 길이야."

그녀는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거친 노동운동의 뼈아픈 기록들을 들이밀었다.

"노조 파업의 역사에서 우리가 언제 이겼고 언제 처참하게 짓밟혔는지 잊었어? 대중의 공감을 잃고 폭력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법과 자본은 우리를 사냥개 다루듯 합법적으로 도살할 명분을 얻게 돼. 아무리 동기가 고결해도 방법이 피로 물들면, 대중은 우리를 그저 미친 테러리스트로 기억할 뿐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끝내 파르르 떨렸다. 그녀 역시 이 가혹한 가결의 결과에 뼈저린 좌절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시민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사악한 폭력배로 전락할 뿐이라고!"

"그럼 손가락만 빨며 저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기계를 깔아뭉개는 걸 구경하자는 겁니까?" 혁진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두 사람의 감정이 임계점까지 치달았을 때, 한동수가 조용히 중재했다.

"두 분 모두 본질적으로는 같은 종착지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다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식의 간극이 클 뿐입니다."


그때, 통신실 문가에 기대어 서 있던 Raven이 낮게 읊조렸다.

"소수의 희생이... 다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면, 그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겁니까?"

그의 눈빛에는 기묘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혁진이 그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역사는 언제나 그런 소수의 결단으로 궤도를 바꾸어 왔습니다."

미영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바로 탐욕이야, 혁진!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 발상 자체가, 저들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우리'의 명분 아래 우리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는 아키텍처와 뭐가 다른데? 너희도 결국 '우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야!"

그녀의 일침은 12장에서 재민이 고뇌했던 '우리' 프레임의 모순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지하실의 열기와 습기가 뒤엉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유민경이 들고 있던 펜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펜이 멈춘 자리에 그녀가 정리한 단단한 문장들이 보였다.

"의미 없는 감정싸움은 그만두죠."

민경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지금 답해야 할 질문은 두 가지뿐입니다. '행동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이 회의는 여기서 끝내고 각자 흩어지는 게 맞습니다."

그녀의 냉정한 정리에 지하실에는 다시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때 Raven이 다시 모니터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말했다.

"현성 내부의 코어 데이터 포트가 열렸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안전 제한 락(Lock)을 무력화할 수 있는 일시적인 프로토콜입니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이 기회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화면 속에 뜬 푸른빛의 코어 분석도가 혁진과 미영의 갈등하는 얼굴을 싸늘하게 비추었다.


혁진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

"대안을 제시해 보십시오, 김 위원장!"

쾅!

혁진의 주먹이 철제 테이블을 강타했다. 지하실 전체가 울리는 듯한 위협적인 파열음.

"언제까지 합법이라는 그 잘난 테두리 안에서 저들의 노리개로 살 작정입니까?"

미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의자가 완전히 뒤로 밀려났다. 그녀는 혁진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힌 듯 그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당장이라도 지하실을 박차고 나갈 것처럼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으나, 그녀의 굳게 쥔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무언가 행동해야만 한다는 당위성과,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마지노선 사이에서 처절하게 찢기고 있었다.

그녀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Episode 003: 결정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유민경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냉철한 눈빛으로 모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왜 테러를 해야 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에 갇혀 있었습니다. '테러'라는 수단 자체를 전제해 두고 명분을 찾으려 하니,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녀가 서류철을 덮으며 혁진과 미영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

혁진의 동공이 작게 흔들렸다. 질문의 전환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프레임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다.

"우리는 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만든 기계 시스템에 희생당하는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싸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총구와 칼날은 어디를 향해야 합니까?"

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에 전과는 다른 명확한 확신이 실려 있었다.

"유민경 씨 말이 맞습니다. 타깃이 잘못되었습니다. 우리의 적은 길거리의 무고한 대중이 아니라, 이 무자비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단물을 빨아먹는 부패한 지도자들입니다."

그가 지도의 붉은 거점들을 차례로 짚었다.

"노동자를 자르고 이윤을 챙기는 서울일원 병원장 김현수, 경쟁병원을 밟기 위해 로봇을 무제한 도입한 ACE 병원장 배진수, 그리고 결함을 은폐하고 국가 경쟁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속인 현성 대표 남궁진. 이들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타깃입니다."

그가 몸을 돌려 미영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무고한 시민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국민을 배신한 지도자들의 비겁한 탐욕의 시스템을 단죄하려는 심판자입니다."

미영은 혁진의 말을 곱씹으며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무겁고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최소한의 정당성을 찾은 듯했다.


"좋아."

미영이 자리에 다시 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질문의 전환에는 동의해. 하지만 내가 이 일에 동참하기 위해선 타협할 수 없는 세 가지 조건이 있어."

그녀가 세 손가락을 펴 보였다.

"첫째, 어떠한 경우에도 무고한 시민은 절대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단 한 명의 무고한 피도 흘려선 안 돼."

"둘째, 우리의 행동은 단순한 물리적 암살이 아니라, 저들의 죄상을 대중에게 고발하는 명확한 '메시지 전달의 수단'이어야 한다. 죽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돼."

"셋째... 이 피의 길의 끝에서, 우리는 결코 저들과 같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선을 넘는 순간, 나는 내 손으로 이 조직을 무너뜨릴 거야."

혁진이 미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수용합니다. 그 세 가지 조건, 우리 조직의 절대적인 행동 강령으로 삼겠습니다."

혁진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한동수가 깊게 고개를 끄덕였고, Raven과 Gear 역시 엄숙한 침묵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결정이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지하실은 유기적으로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Raven은 통신실로 달려가 타깃들의 개인 동선과 보안 프로토콜을 해킹하기 시작했고, Gear는 안쪽 작업실에서 아직 겉 케이스가 씌워지지 않은 불길한 기계 장치의 배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전기 용접 불꽃이 지하실의 어둠을 간헐적으로 찢어발겼다.

한동수가 혁진에게 다가와 유민경이 작성한 1차 타깃 기획안을 건넸다.

혁진은 그 종이 위에 인쇄된 세 명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그 사진을 금속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는 순식간의 정적.

.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혁진의 손가락 끝이 사진 속 인물의 이마를 짓눌렀다. 그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지하실의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은 다가올 피의 서막에 대한 두려움이자,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향하는 인간적인 마지막 비명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일원 병원 직원 휴게실.

박지영은 야간 근무 도중 켜둔 스마트폰 화면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뉴스 채널에서는 국회 표결 결과에 따른 노동계의 거센 반발과 함께, 정체불명의 철폐파 조직이 보낸 불길한 '선전포고문'이 긴급 속보로 다뤄지고 있었다.

[속보: 철폐파 극단 세력, "탐욕의 시스템을 설계한 자들을 단죄하겠다" 테러 예고]

"정말로... 진짜 테러가 일어난다고?"

지영은 온몸에 엄습하는 으스스한 소름에 팔을 감싸 쥐었다. 무섭고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기이한 감정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왜 나는 저 미친 사람들의 경고가... 무서우면서도 어딘가 이해가 되는 거지?'

기본소득의 달콤함 뒤에 가려진 기계들의 차가운 소외감, 그리고 병원 요양원 환자 곁에서 영혼 없이 온화하게 웃고만 있던 미소의 그 기괴한 눈동자...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의 검색창을 다시 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주저 없이 단어들을 꾹꾹 눌러 담아 쳐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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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입력한 검색어는 어두운 액정 화면 위에서 파랗게 명멸했다. 마침내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지영의 손가락 끝에 차가운 긴장감이 스쳤다.

지하실에 켜진 기계들의 푸른 모니터 빛처럼, 새로운 각성의 파도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