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4: 혼란
Episode 001: 현장
따르릉—— 따르릉——
낡은 사무실의 날카로운 유선 전화벨이 적막을 찢었다.
형사 신동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눈알은 붉은 실핏줄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목구멍에서는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간신히 2시간 남짓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그의 모니터에는 어제 종일 처리했던 단순 취객 폭력 사건의 미완성 보고서가 켜져 있었고, 식어버린 종이컵 속 커피 위에는 기분 나쁜 기름 막이 떠 있었다.
수화기를 귓가에 대자마자 상황실 직원의 무감한 음성이 귀로 쏟아져 내렸다.
"테러 발생. 성북구 최동수 의원 자택. 경비용 휴머노이드 자폭. 현장 중상자 1명 발생해 한국대학병원으로 이송 중."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단어 조각들이 단숨에 '사건'이라는 단어로 정렬되었다. 직업적 반사신경은 무서웠다. 눈을 뜬 지 채 3분도 되지 않았으나, 동혁의 몸은 이미 낡은 재킷을 나꿔채며 일어서고 있었다.
"현장 좌표 보내고 감식반 무전 연결해."
그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평소처럼 정확했다. 미처 머리가 사태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전에, 경찰이라는 직업적 모드가 몸뚱이를 이끌고 있었다.
현장은 찢어지는 듯한 사이렌 소리와 적색, 청색의 플래시 불빛으로 어지러웠다. 노란색 경찰 통제선(POLICE LINE) 너머로 밤의 장막이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피해자인 3선 국회의원 최동수의 성북구 고급 단독주택.
현관 입구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가사·경비용 휴머노이드의 금속 잔해가 처참하게 흩어져 있었고, 검은 그을음이 정원의 잔디밭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깨진 대형 유리창 조각들 사이로 응급대원들이 의원을 지혈했던 피 묻은 거즈와 붕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후배 형사 이주호가 먼저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집을 지키던 경비 로봇이 갑자기 주인을 덮쳤대요. 흉부를 관통시키고는 그대로 심장부 배터리를 과부하시켜서 자폭했습니다."
"자폭... 로봇 스스로 가동 제한 락을 깨고?" 동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네, 그리고 범인은 없습니다. 현장을 빠져나간 외부인의 흔적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동혁은 가만히 쪼그려 앉아 타버린 회로 냄새를 들이마셨다. 구부러진 고강도 알루미늄 프레임과 그을린 전선들.
"이건 단순 오작동이나 일반적인 강도 범죄가 아니야."
"에이, 선배님." 주호가 긴장을 풀려는 듯 넉살 좋게 말을 걸어왔다. "철야 끝나자마자 대한민국 최초의 로봇 자폭 테러를 맡다니, 우리도 참 팔자가 기가 막히네요."
평소라면 한 대 쥐어박으며 받아쳤을 농담이었으나, 동혁의 입가에서는 끝내 어떤 미소도 피어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직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주호 역시 선배의 어두운 표정에서 기이한 침묵을 감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동혁은 2층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흐트러진 책상 위에는 최 의원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 서류와 각종 로비 의혹이 얽힌 정재계 인명 목록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최동수... 뉴스에서 숱하게 보았던 얼굴이다.'
"해킹이네."
감식반 요원이 탄화된 휴머노이드의 메인 CPU 코어를 핀셋으로 뽑아내며 단언했다.
"외부에서 정밀한 침입 명령이 들어왔어요. 겉으로는 보안 서버의 신호를 정상적으로 수신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안으로는 코어 안전 3원칙 프로토콜을 완전히 우회했습니다."
"우회가 그렇게 쉽게 되나?" 동혁이 물었다.
"펌웨어에 치명적인 제로데이(Zero-Day)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제조사에서 6개월 전에 패치를 배포하긴 했는데... 이 기기에는 적용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경비 업체의 관리 소홀이었을까?" 감식반원이 중얼거렸다.
"아니..." 동혁이 서재 책상의 비밀 금고 내부 서류를 넘기며 차갑게 대꾸했다. "누군가가 보안 업데이트 서버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차단해 둔 흔적이 있어. 로봇의 오작동 시비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백도어를 열어둔 거지."
그때 주호가 태블릿 화면을 동혁의 눈앞에 밀어 넣었다.
"이 사람, 뒤가 아주 구린 정치인이었네요. 로봇 제조사 현성하고 파파에서 거액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내사 단계까지 갔었어요. 보건복지위에서 로봇 한도법 가결되도록 판 깔아준 핵심 인물 중 하나고요."
"근데 왜 기소가 안 됐지?"
"증거 불충분이죠, 뭐. 꼬리를 다 잘랐으니까."
동혁은 서류 뭉치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들을 현성 계열사 요직에 특혜 채용시키고, 아버지는 국회에서 그 대가로 확대 안건을 던졌다...'
현장 통제가 얼추 정리되고 감식 요원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동혁은 정원의 그을린 잔디밭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깨진 장독대 조각 위로 붉은 사이렌 불빛이 유령처럼 어른거렸다.
최동수. 3선 국회의원. 보건복지위원회의 확대파 우두머리. 모든 비리 의혹을 합법이라는 견고한 성벽 뒤로 숨겨두었던 사내.
"선배님, 가시죠." 차에 올라탄 주호가 그를 불렀다.
"주호야." 동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최 의원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냐?"
"네? 그냥 썩어빠진 전형적인 정치인이죠. 근데 우리 일은 그런 놈이라도 살해당하지 않게 지키고, 죽이려 한 놈들을 잡는 거잖아요."
주호의 대답은 명쾌했으나, 동혁의 귓가에는 깊은 균열을 남겼다.
'이것은 무작위적인 광기의 테러가 아니다. 아주 명확하고 도덕적인 사법 사적 제재... 타깃은 정교하게 조준되었다.'
동혁은 주머니 속에서 최동수 의원의 반듯한 프로필 사진을 꺼내어 응시했다. 그의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소리 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Episode 002: 수술
끼이이익——!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긁으며 한국대학병원 권역외상센터 입구에 구급차가 들이닥쳤다.
공기압 문이 쾅 열리며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동식 침대 위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흉부를 가려진 채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폭발 파편에 의한 흉부 관통상! 혈압 70에 40, 쇼크 상태입니다!" 응급구조사의 다급한 외침과 기계음들이 뒤섞였다.
당직 호출을 받은 정재민은 이미 손 소독을 마치며 응급실로 뛰어 내려왔다. 그의 눈이 환자의 멍들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닿는 순간——
그의 뇌세포 전체가 얼어붙는 듯했다.
'이 사람... 최동수 의원?'
어제 국회 청문회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속에서 안드로이드의 확대를 외치며 소리 높여 일장연설을 토해내던 그 오만한 자본의 대변자였다. 그의 표 한 장이 서준이 지키려 했던 세상의 판도를 8대 6이라는 잔인한 가결로 바꾸어 놓았었다.
재민의 메스를 쥔 손가락 끝에 잠시 기괴할 정도의 단단한 힘이 들어갔다.
'내가 지금...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그러나 찰나의 흔들림은 이내 프로페셔널한 의사의 차가운 본능 아래로 가라앉았다.
"흉강 내 대량 기흉 및 혈흉. 즉시 개흉해야 합니다. 수술실 준비해 주세요!"
그의 지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단호했다.
수술실의 무영등이 백색의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재민의 손놀림은 기계보다 더 정확하게 움직였다. 메스가 흉부를 가르고, 전기 소작기가 출혈점들을 지져대며 메케한 냄새를 풍겼다.
흉강을 벌리자 잔인한 폭발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비 로봇의 자폭 당시 날아든 날카로운 합금 파편 세 개가 흉막을 뚫고 폐와 심장 주변부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핀셋."
재민은 심장 하엽 근처에 박힌 첫 번째 파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피 묻은 쇠붙이가 금속 그릇에 담겼다.
'이 사람의 뛰는 심장이 지금 내 손안에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갈 법안을 웃으며 통과시켰던 그 심장이, 의사인 나의 손가락 끝에서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내가 이 실을 조금만 느슨하게 묶는다면, 이 가증스러운 자본의 꼭두각시는 그대로...'
"선생님, 바이탈 흔들립니다!" 마취과 의사의 날카로운 경고음이 들렸다.
추가 출혈이었다. 깊숙이 박혀 있던 마지막 미세 파편이 동맥 벽을 건드리며 피가 솟구쳤다. 30초 내에 지혈하지 못하면 테이블 데스(Table Death)였다.
순간, 재민의 머릿속에서 모든 잡념이 하얗게 지워졌다.
그는 오직 출혈이 일어나는 붉은 혈관과 날카로운 파편의 각도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시민으로서의 증오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의학적 공간.
"클램프, 실크 3-0!"
그의 손가락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파편을 이끌어내고, 터진 동맥 벽을 정교하게 옭아매는 봉합사의 궤적이 완벽한 곡선을 그렸다.
삐—— 소리를 내며 날뛰던 모니터의 심박수가 이내 평온한 리듬을 되찾았다.
"상황 종료. 수술 성공입니다."
재민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손을 내렸다. 완벽한 집도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묵직한 가슴속의 공허함이 유령처럼 그를 덮쳐왔다.
수술복에 붉은 피를 잔뜩 묻힌 채 재민은 잠시 대기 복도로 나왔다.
복도 저편 간이 의자에는 어깨에 경미한 파편 부상을 입고 붕대를 감은 김도훈 보좌관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경찰의 진술 요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재민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청문회 준비 기간 동안 재민을 비웃으며 권력을 과시하던 도훈의 거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짐승 같은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고, 재민의 피 묻은 가운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침묵했다.
재민은 그를 경멸어린 눈빛으로 잠시 응시하다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다시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다.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최동수 의원의 침대를 바라보며, 재민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방금 사형집행인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이것이 의사로서의 정의라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나는 과연 비겁한 방관자인가?'
주머니 속 아버지의 아날로그 시계가 그의 심장 소리보다 더 크게 똑딱거렸다.
Episode 003: 의문
늦은 오후의 경찰서 사무실.
동혁의 책상 위에는 금융감독원에서 넘겨받은 최동수 의원의 차명 계좌 분석 서류들이 흩어져 있었다. 창문 틈새로 비쳐 드는 주황빛 석양이 먼지더미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금융범죄 수사팀의 김나연 형사가 차트를 짚으며 말했다.
"정확히 로봇 한도법 표결 일주일 전, 대주주 관계사로부터 수억 원의 돈이 '기술 자문료' 명목으로 최 의원의 해외 페이퍼 컴퍼니 계좌로 정기적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형식은 합법적인 자문 계약이지만, 타이밍과 금액이 명백히 대가성 뇌물임을 가리키고 있어요."
"합법의 가면을 쓴 뇌물이라..." 동혁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게다가 최 의원의 장남이 작년 현성의 전략기획팀 특별 채용 과정에서 임원 추천서 한 장으로 합격한 기록도 확인되었습니다. 실력은 꼴찌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명백한 불법을 입증하기엔 너무나 정교하게 짜인 세탁망이었으나, 부패의 사슬은 눈이 멀 정도로 선명했다.
'아들의 일자리와 수억 원의 돈을 챙긴 대가로, 수만 명의 노동자를 길거리로 모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거군.'
동혁의 턱뼈가 단단하게 불거졌다.
POV Insert — 뉴스 16:00
동혁은 사무실 벽면의 TV 뉴스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 개의 주요 채널이 일제히 같은 소식을 쏟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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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A: "사회 전복을 노리는 불순 세력의 테러 피습! 로봇을 무기화한 잔인한 범행에 경찰은 철폐파를 지목하고 고강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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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B: "국회의원 테러로 중상, 병원 응급 수술 성공 후 회복 중.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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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C: "안전지대는 없다... 경비 로봇마저 흉기가 되는 세상, 휴머노이드 보안 패치 의무화 시급."
그 어떤 뉴스에서도 최동수 의원이 저질렀던 더러운 정경유착과 아들의 채용 특혜 의혹은 단 한 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국가 시스템은 여전히 '테러=절대악'이라는 편리한 프레임만을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었다.
동혁이 스마트폰을 켜고 실시간 커뮤니티와 SNS 반응을 스크롤하자, 뉴스와는 전혀 다른 여론의 뜨거운 균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의원이 로봇 돈 받아 처먹고 로봇한테 뒤질 뻔했네ㅋㅋㅋ 이게 진짜 권선징악인가?"
"테러는 나쁜데 솔직히 최동수라서 동정표가 안 간다. 솔직히 시원하긴 함."
"기레기들아, 최동수가 현성한테 아들 취업시키고 돈 받은 건 왜 보도 안 하냐? 철폐파가 타깃은 진짜 기가 막히게 잡았네."
철폐파가 의도했던 정밀 타격의 메시지 효과가 대중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법이 단죄하지 못한 악인을 기계의 폭력으로나마 처벌했다는 묘한 카타르시스.
동혁은 담배갑을 챙겨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붉게 타들어 가는 석양 아래, 동혁은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었다.
배용진 팀장이 캔 커피 두 개를 들고 옥상 철문을 열고 나왔다.
"고생 많다, 신 형사. 대충 정리하고 퇴근해라."
"팀장님." 동혁이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물었다. "우리는... 법을 어겨가면서 부를 쌓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저들의 목숨을 노린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겁니까?"
배 팀장은 가만히 커피 캔을 만지작거리며 먼 도심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나도 젊은 시절엔 네놈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지... 하지만 신 형사, 그 질문은 머릿속에 한 번 박히면 절대 사라지지 않아. 결국 네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지."
그가 동혁의 어깨를 툭 쳤다.
"우리가 할 일은 범인을 잡는 거다. 그게 개 같은 세상이라도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며 굴러가게 만드는 방식이니까. 잊지 마라."
배 팀장이 내려간 뒤, 동혁은 혼자 남겨진 옥상에서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켰다. '유진'이라는 이름이 켜졌다. 로봇 보안과 해킹에 대해 국내 최고의 기술을 가진 그녀라면, 이번 경비 로봇의 자폭 루프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동혁은 전화를 걸지 않고 화면을 꺼버렸다.
이 지독하고 추악한 음모의 아수라장에 그녀의 맑은 영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고, 만약 그녀가 이 폭력에 대해 차가운 긍정을 보낸다면 스스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밤, 한국대학병원 옥상.
재민은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의사당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응급실 입구에는 여전히 최 의원의 상태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품에서 아버지의 낡은 세이코 아날로그 시계를 꺼내 들었다.
'내가 오늘 살려낸 그 사내는 내일이면 깨어나고, 모레면 다시 국회로 돌아가 기계를 늘리고 노동자들을 내쫓는 법안에 도장을 찍겠지... 내 정교한 메스가 결국 더 많은 약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결정을 가능하게 만든 셈인가?'
의사로서의 서약과 인간으로서의 정의감이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었다.
재민의 오래된 시계 초침이 어두운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똑딱. 똑딱. 똑딱.
경찰서 서랍 속 동혁의 모니터 화면 역시 최 의원의 뇌물 수수 내역을 띄워둔 채 깜빡거렸다.
깜빡. 깜빡. 깜빡.
서로 다른 공간, 그러나 같은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동일한 깊이의 질문을 부여잡고 홀로 번민하고 있었다. 법은 테러를 잡으라 하고, 의학은 환자를 살리라 하지만, 그들의 심장 속 정의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편, 성동구의 어느 외진 빌라 창가.
철폐파의 수장 권혁진은 깊어가는 서울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며 태블릿의 뉴스 속보를 껐다. 그의 입가에 희미하고 싸늘한 미소가 스쳤다.
"첫 번째 메시지는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다음 타깃——ACE 병원장 배진수의 사진을 조용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서울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고, 파멸로 향하는 시계 초침의 질주는 이제 막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