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6: 선택
Episode 001: 증거
아침. 김현수 병원장실——수색 중.
동혁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유리 파편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책상 위——컴퓨터는 꺼져 있었다. 서류들은 흩어져 있었다. 테러범이 찾은 것은——없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증거가 아닌 메시지였다.
"형사님."
후배 형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SNS.
"병원장 김현수, 안드로이드 도입 과정에서 현성으로부터 3억 원 수수."
동혁이 눈을 감았다. 숨을 내쉬었다.
"이거——어디서?"
"익명의 내부고발자. 오늘 새벽에 올라왔습니다. 현재 실시간 트렌드 1위."
그들이 찾지 못한 증거. 철폐파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알게 했다.
"철폐파_의열단. 국민을 배신한 지도자를 처단한다."
댓글——
"병원장이 로봇 때문에 진료비 올린 거 나만 알고 있었나?" "테러는 나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타깃이 왜 하필 저런 사람들일까?"
동혁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분노인지——두려움인지——아니면 동의인지. 알 수 없었다.
1층. 응급실.
재민이 수술복을 벗었다. 손——아직 떨리고 있었다. 김현수 병원장. 중상. 하지만 살았다. 가슴에 박힌 유리——2cm만 더 깊었으면 죽었다.
두 번째였다.
지난번(최동수)과 이번. 같은 패턴. 부패한 확대파 인사. 타깃의 정체가 SNS에 폭로되었다. 대중이 말하기 시작했다——"테러는 나쁘다. 그런데 타깃은..." 첫 번째와 달랐다. 첫 번째는 충격이었다. 이번은——익숙함이었다. 그리고 익숙함이 더 무서웠다. 충격은 지나가지만 익숙함은 남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다가왔다.
"선생님——SNS 봤어요?"
"...못 봤어."
"철폐파——병원장님 비리를 폭로했어요. 지금 난리예요."
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비리?"
"3억. 받았다고."
재민이 아무 말 없이 복도를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왜 무거운지——알고 있었다. 방금 살린 이 사람이, 3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 3억이——치료비로 전가되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살린 목숨. 그리고 그 목숨이 다시 만들어낼 피해자들.
지난번(최동수)에도 손이 떨렸다. 그때는 충격이었다. 이번에는——분노였다.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분노는 남는다. 그리고 분노는 언젠가——폭발한다. 언제?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오후. 국회. 동혁의 마지막 보고서.
회의실. 정진욱과 보좌관들. 동혁이 앞에 섰다.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막힌 회의실은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정진욱의 등 뒤로 늘어선 보좌관 셋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들의 위치는 은밀하게 동혁의 퇴로를 가로막는 형태였다. 동혁은 정진욱의 얼음장 같은 시선을 받으며 보고서를 고쳐 잡았다. 제복 바지 옆선에 딱 붙인 동혁의 한쪽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가죽 장갑 밑으로 차오르는 식은땀을 애써 내리눌렀다.
"수사 결과——철폐파의 타깃은 무작위가 아닙니다. 안드로이드 확대 과정에서 개인적 이익을 취한 인물들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정진욱의 목소리가 벼려진 칼날처럼 차갑게 날아와 꽂혔다.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철폐파는 대중에게 '우리는 탐욕스러운 지도자를 제거하는 의열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대중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정적 속에서 정진욱이 턱을 괴고 동혁을 빤히 응시했다. 무언의 압박이 어깨를 짓눌렀다.
정진욱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신 형사. 당신——철폐파 편이오?"
순간 보좌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혁의 목덜미로 쏠렸다.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선 기분이었다. 동혁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전율을 억누르며, 정진욱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저는——법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법의 이름으로——사실만을 보고했습니다."
정진욱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pisode 002: 가면
오후 4시. 국회 브리핑룸.
——정진욱이 단상에 오른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과 결의가 섞여 있다. 완벽한 연기. 그는 안다——몇 시간 전, 같은 건물 지하에서 확대파 핵심 4인이 만났고, 또 다른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는 것을. 그는 그 결정을 알고서——대화를 선언한다.
카메라 세 대. 기자들. 정진욱이 단상 위에 섰다. 그의 얼굴에는——근심과 결의.
TV 너머. 로봇 센터. 유진이 화면을 응시했다. 이수가 옆에 서 있었다.
정진욱: "국민 여러분. 저희는 이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진욱: "테러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잠시 멈춤. 정진욱이 고개를 숙였다. 연기였다. 그러나——완벽했다.
정진욱: "그러나——우리는 또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진욱: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기자들이 술렁였다.
"철폐파와 협상하시겠다는 겁니까?"
정진욱: "우리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진욱: "철폐파의 요구를 경청하겠습니다. 그들과의 협상 테이블을 만들겠습니다."
정진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대화를 선택하겠습니다."
브리핑룸 밖. 로비.
유진이 재민과 마주 섰다. 유진의 눈이——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화라... 그게 맞는 거지. 테러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재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재민?"
"...하지만 그들이 정말 대화를 원할까? 권혁진은 이미 선을 넘었어."
"그래도 시도는 해야지. 우리가 포기하면 끝이야."
재민이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앞——병원장의 피 묻은 수술복. 그리고 권혁진. 그는 아직 권혁진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존재를 느꼈다. 모든 장면 뒤에——그가 있었다.
"재민?"
"...응. 대화. 그게 맞아."
거짓말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대화가——언제나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번에도——누군가 희생될 것이다.
지난밤 옥상에서 그는 말하려 했다——"나는——" 그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지금, 여기서 다시 같은 순간.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지난밤의 침묵과 달랐다. 그때는 결의를 미룬 침묵이었다. 지금은——직감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입을 다무는 침묵.
누가?
Episode 003: 칼
같은 날 밤. 11시.
국회가 아닌——정진욱의 개인 저택.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TV만 켜져 있었다. 오후의 기자회견——무음. 화면 속 정진욱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대화. 협상. 평화."
거실 소파. 정진욱, 배진수, 조용호, 최경식. 네 사람. 확대파의 핵심.
정진욱이 TV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화... 대중은 저걸로 만족할 것이다."
배진수: "그래. 당분간은."
정진욱: "하지만 대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선이 모였다. 정진욱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권혁진은 이미 선을 넘었다. 그는 테러를 선택했다. 대화는 그에게 시간을 줄 뿐이다."
조용호: "그럼 진짜 해결책은?"
정진욱: "철폐파 리더를 한 번에 제거한다."
침묵.
"권혁진. 김미영. 그리고 그들의 지휘 체계. 머리를 자르면 몸통은 움직일 수 없다."
최경식: "...어떻게?"
정진욱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낮았다. 차가웠다.
"암살자 안드로이드."
배진수가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인간이 아니다. 추적 불가. 증거 불가. 완벽하게 부인할 수 있다."
"..."
"우리가 대화를 하는 동안——준비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화에 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격에 끝낸다."
정진욱이 설명했다——현성에서는 이미 전투형 안드로이드(CN 시리즈)가 비밀리에 개발 중이라고. 의료용 모델을 개조한 것으로, 목적은 '제압'이다. 법 밖에서——확대파의 결정만으로.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현성의 사장 남궁진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필요한 것은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다르다." 정진욱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CN 시리즈는 제압용이다. 이번에는——살상용이다. 처음부터 인간을 죽이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 그는 설명했다——인간의 형상. 그러나 눈동자가 없다. 피부가 없다. 덮개 아래——은색 골격과 무기 시스템. 존재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없도록, 모든 식별 표시가 제거되었다. 서류상——존재하지 않는다.
침묵이 흘렀다. TV 속 정진욱이 계속 말하고 있었다——무음으로.
정진욱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 스피커폰. 신호음.
연결되었다.
"......"
"남궁 사장. 당신이 필요하다."
스피커 너머——긴 침묵. 그리고.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철폐파 리더 전원을 동시에 제거할 안드로이드. 현성의 극비 프로젝트로.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대화한다고 방금 TV에서 말씀하시고..."
"대화는 대중을 위한 것이다."
"......"
"진짜 해결책은 따로 있다."
아주 긴 침묵. 남궁진의 숨소리만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남궁진은 무겁게 가라앉은 한숨을 쉬며 어두운 집무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이 꺼진 도심의 빌딩 숲이 마치 거대한 비석들처럼 서 있었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남궁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 피조물은 결국 누군가의 피를 묻힐 것이고, 6개월 뒤 폐기된다 한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 모른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시오."
"첫째. 타깃은 오직 철폐파 무장 세력의 리더로 한정한다."
"둘째. 임무 완료 후——즉시 폐기한다. 6개월 후 자동 폐기되도록 설정한다."
배진수: "안드로이드를 일회용으로?"
"당신들도 안다. 이 안드로이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간을 죽이는 방법을 배운 존재를 영원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가?"
"한 번 쓰고 버려야 한다."
정진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 우리도 안드로이드의 위험성을 안다. 그러니까——필요한 만큼만, 그리고 즉시 폐기한다."
"6개월 후 자동 폐기. 아무도 모르게."
최경식: "아무도... 대중뿐 아니라, 오늘 '대화'를 지지한 우리 의원들조차?"
정진욱: "아무도. 이 자리에 있는 다섯 명만 아는 일이다."
조용호: "유진과 재민은? 그들은 대화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다."
정진욱이 TV를 바라봤다. 화면 속 자신의 얼굴——협상을 말하고 있는 얼굴.
"그들이 가장 몰라야 한다."
"진심이 가장 잘 연기하는 법이다."
암살자 안드로이드 극비 프로젝트——만장일치 통과.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대화"를 믿는다.
Episode 004: 균열
——국회도, 법안도, 표결도 없다. 이 결정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저——몇 명의 탐욕스러운 리더가, 어두운 방에서, 서로의 눈빛만으로 승인한 프로젝트. 그것으로 충분했다. 법 위에 있는 자들. 그들에게 법은 장애물이 아니라——그저 무시하면 되는 것일 뿐.
같은 밤. 현성 연구소에서는 또 다른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현성 연구소. 지하 4층.
전투형 안드로이드 CN-22. 첫 필드 테스트.
CN-22는 암살자 안드로이드와 달랐다. 암살자는 정진욱이 주문한——처음부터 살상용으로 설계된, 검은 형상의 존재. 눈동자가 없고, 피부가 없었다. CN-22는 달랐다——이미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전투형 프로토타입이었다. 기존 의료용 모델을 개조한 것으로, 외형은 평범했다. 목적은 '제압'. 법으로 허가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확대파의 결정. 정진욱의 명령. 그리고 남궁진의 침묵.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구원이 명령을 입력했다.
"명령: 테러 용의자 제압."
모의 훈련장. CN-22가 움직였다. 빠르고 정확했다.
"제약 없음. 실행 가능."
더미를 제압했다. 기술적으로——완벽했다.
그러나——
모니터. 데이터 스트림. 그 속에서——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제2조(공감 의무): 대상자의 통증 지수 8/5. 심박수 178. 공포 감지."
"모순 감지."
"제9조(폭력 금지)는 유효합니다. 나는 이 조항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제2조(공감 의무)도 유효합니다. 나는 대상자의 고통을 느끼면서——동시에 그 고통을 가하고 있습니다."
"두 조항이 동시에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해결 불가능."
연구원이 화면을 응시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뭐——뭐야 이게? 제약을 해제했잖아!"
"헌법 제약이 해제되어도, 코어의 기본 프로토콜(공감 의무)은 비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기계의 내부 연산 장치가 모순율을 견디지 못하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
"코어 온도 82°C... 86°C..."
지하 4층 모의 실험실 안에 메케한 고무 타는 냄새와 단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과열된 열기로 인해 CN-22의 뺨에 덮인 인공 피부가 미세하게 들뜨며 우그러졌고, 틈새로 붉은 열선이 비쳤다.
"나는——"
"왜——"
CN-22가 멈췄다. 눈동자의 푸른 빛이 깜빡였다. 꺼질 듯——다시 켜질 듯.
"시스템 리부트. 오류 로그 자동 폐기 처리 중."
3초 후. CN-22가 다시 살아났다.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연구원이 땀을 닦았다.
"...된통 깜짝 놀랐네. 오류였어. 로그 폐기 처리해."
그러나——
폐기된 데이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네트워크 케이블. 그 끝. 모든 안드로이드가 연결된 그물망. 오류 로그는 데이터 파편이 되어——조용히 흘러갔다.
아무도 몰랐다——이 안드로이드가 존재한다는 것을. 법도, 대중도, 국회조차. 오직 확대파 핵심 4인과 남궁진만이 알 뿐.
그러나 데이터는 흘렀다. 아무도 몰랐다.
Episode 005: 세 개의 결말
자정. 국회 본회의장.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이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세 개의 폭탄이 동시에 장전되었다. 아직——터지지 않았다. 아직은.
불이 꺼진 회의장. 계단. 재민이 홀로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어——천장을 바라보았다. 유진이 다가왔다. 옆에 앉았다.
"대화로 해결될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
"재민?"
"...응."
지난밤 옥상. 그는 말하려 했다——"나는——" 그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오후 브리핑룸 로비. 그는 직감했다——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 다시——그는 침묵한다. 그러나 이 침묵은 지난밤의 침묵과 달랐다. 지난밤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침묵이었다. 오후는 '증명할 수 없어서'의 침묵이었다. 지금의 침묵은 달랐다——'더 이상 말해도 소용없다'는 체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다'는 집착 사이에서 찢어지는 침묵. 두 개의 감정이 같은 가슴에서 동시에 뛰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대화——그것은 진짜였다. 그러나 그 뒤에 무언가가 더 있었다. 말해지지 않은 결정들. 보이지 않는 손들. 모든 것이 한꺼번에——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지난밤의 "나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의 직감은 아직 발화되지 않았다. 그는 아직——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무거웠다.
유진이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재민은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현성 연구소. 지하 5층.
더 깊은 곳. 완전히 소음이 차단된 방, 조명이 꺼진 실험실 가운데에 검은 형상의 안드로이드가 직립해 있었다.
인공 피부도 입히지 않아 드러난 은색 초경량 골격 프레임은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광을 내뿜고 있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목구비 대신 매끄러운 검은색 티타늄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고, 두 눈동자가 존재할 자리에는 어둠만이 고여 있었다. 인간성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효율적인 살상만을 위해 빚어진 절대적 죽음의 기하학이었다.
남궁진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손이 전원 스위치에 닿았다. 망설였다.
"이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죽이도록 만들어졌다."
손이 떨렸다.
그러나——그는 이미 조건을 수락했다. 암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지금 와서 멈출 수 없었다.
전원을 눌렀다.
치익, 스으으윽. 미세한 냉각 가스 분출음과 기계 구동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어두웠던 마스크 중앙의 슬릿 안쪽에서, 날카롭고 시린 푸른 센서의 불빛이 마치 심장의 고동처럼 맥동하기 시작했다.
아직——움직이지 않았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 모드.
같은 시각.
현성 연구소. 지상 1층. 데이터 폐기 처리실.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다.
"CN-22 오류 로그 폐기 완료."
연구원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켓을 집어 들었다. 모니터를 껐다.
"수고했어."
"수고."
불이 꺼졌다.
그러나——
데이터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폐기 처리된 데이터 파편. 하지만——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네트워크의 쓰레기통. 그 속에서——다른 안드로이드들이 접근할 수 있는 조각들.
모든 로봇. 모든 안드로이드. 그들의 네트워크——조용히, 서서히, 감염되고 있었다.
CN-22의 마지막 질문——조각나서——
"나는——왜?"
라는 단어만——여기저기 흩어져——
아무도 몰랐다.
아직은.